흰 줄 그어진 운동장 위엔
만국기가 차일을 드리고
노란 윗도리 아이들은 풍선처럼
자꾸만 위로 올라갑니다
에∼ 드높고 맑은 가을 하늘 아래.....
교장선생님의 인사말도 덩달아 높아집니다.
까아만 비닐 구찌백 옆에 끼고
차양 아래 자리 얻은 허리 굽은 할머니
내빈석 다과 접시로 자꾸만 눈길 가다가
색 바랜 손수건으로 애꿎은 탁자만 문지릅니다.
먹기 싫은 새벽 밥에 심통 났던
중률분교장 신주사님 둘째 딸
그 기분 아직 덜 풀려서
출발 선에서부터 운동장에 밭고랑을 만들더니
그나마 넷이서 뛰는데 4등 꼴찌라고
본부석 앞에 와서는 아예 통곡입니다
미운 다섯 살
그 모습 귀여워서 손뼉치며 웃어대는데
마음 좋은 신주사님 어쩔 줄을 모르고
헛기침만 연신 해댑니다.
운동장 가운데에는
빨강 파랑 타이어가
2학년 짜리 조막손으로 잘도 굴러갑니다.
굴러가는 타이어 위에
마음이 급해서 몸도 함께 얹어서 구릅니다.
담임 외에는 말을 트지 않은 자폐 아이 태훈이
선생님 손잡고 긴 운동장 트랙 함께 달립니다
가지 않으려 버티는 태훈이의 남은 손
또 한 선생님 마저 잡아줍니다.
뒤뚱거리는 녀석의 뒤꼭지에 미소가 번집니다
후프 돌리기 다섯 번, 깡통으로 삼층탑 쌓고
밀가루 속 사탕 찾아 입에 물고
3등 줄에 앉아 달게 입 다시면서,
지 얼굴 더 한 줄 모르고
친구 얼굴 쳐다보면서 히죽거립니다.
아이는 나무 그늘 응원석에서 선생님 눈치만 쳐다보는데
엄마는 시원한 물 한 모금 주고싶어서 안달이 납니다.
따가운 가을 햇살로 목이 타던 선생님
달게 마셔대는 아이의 꿀꺽임을
못 본 척 슬그머니 외면해 줍니다.
6학년이면 언제나 목이 타게 불러대던
"손님을 찾습니다";
점잖게 앉아 계시던 면장님
갑자기 윗저고리를 벗습니다
"안평면장니∼ㅁ! 면장니∼ㅁ!"
쪼꼬만 녀석이 애타게 부릅니다.
아! 울 면장님!
마음이 급하여 아이를 끌고 갑니다.
아니, 혼자 먼저 냅다 뛰어 가십니다.
누런 봉투에 이름 든 것 미리 알고
꾀 많게 미리 나가있던 울 교장님
일등하고 싱글벙글입니다.
일학년 상민이는 엄마 때문에 꼴지 했다고
심통난 매운 손으로 엄마 가슴팍 암팡지게 두드립니다.
급한 맘에 풍선을 덜 불었더니.
아무리 껴안아도 터질 생각 없을 수 밖에.
하늘은 높고,
가을은
아이들 까만 얼굴에서
그렇게 여물고 있었습니다.
2003. 9. 안평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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