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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나누기/사는 이야기

안동 촌놈

by 여왕벌. 2007. 9. 6.

 


친구.

이사를 하고 일주일이 후딱 지나가고 벌써 목요일이네. 

도교육청에 중장기 프로젝트 기획단 참여로 6개월 간 파견 나와 있다네.

교감으로 발령이 난 학교에는 이름만 있는 교감이 되어 버리고 몸은 대구에 잠시 머무르고 있는 거지.


두달 동안 안동 대구를 출퇴근 했더니 무리인 거 같아서, 산격동 체육관 부근에 원룸 하나 얻었지 뭔가.

오늘은 혼자 살림에 필요한 것들을 이것 저것 사기 위해서, 퇴근하면서 근처에 있는 홈프러스에 들렀지.


밤이라 지리도 잘 모르는데 차를 몰고 가다가 보니 저만치서 간판이 보이는기라.

얼른 바깥 차선으로 옮겨서 우회전을 하니 눈치껏 제대로 짚었는지 입구가 보이더군.


앞 차를 따라 주차장으로 가는데 안내원이 대구대구 올라가라고 손짓을 하는 거야.

이 눔의 홈프러스에는 사람이 얼마나 오길래 주차할 곳도 없는가 하고 투덜거리는데,

아차! 잘못하여 출구 쪽으로 방향이 잡혀 버렸네.

안내하는 아가씨가 나를 나가는 차인 줄 알고 출구 쪽으로 두 손을 납죽히 신호를 보내버린 거지.

이걸 어쩌나 하고 오늘은 틀렸다 생각했는데, 마침 내려오는 커브에 한 자리가 비어 있는 거라. 얼른 차를 주차했지.


3층 주차장에서 1층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를 타려다가 보니 물건 담는 구루마가 근처에 수북하게 있대.

한 대를 끄집어 당기니 안빠져 나오는기라. 안동에 있는 홈마트는 구루마를 쉽게 사용할 수 있는데,

자물쇠로 잠가 놓은 걸 보고 대구 인심 참 수왁하다 그랬지.

그러다가 '아! 여기는 그냥 보관해 두는 거로구나!'하고 1층으로 내려가니 역시 모두 잠겨 있는 거라.

그런데 구루마를 끌고 다니는 사람들은 많거든? 도대체 어쩐 일인가? 하고 가만히 서 있었지.

선생 체면에 물어보기도 자존심 상하고, 또 어디서 굴러온 촌 놈인가? 하고 무시당할 것 같기도 해서 말이야.


한참 어정거리는데 한 가족이 오더니 구루마로 다가 오는거야.

이 때다 싶어서 슬그머니 옆에 서서 보았더니 동전을 넣는 것 같아.

옳다꾸나 하고 나도 자물쇠가 있는 곳이 백원짜리 동전을 넣었지.

헌데 그 사이에 그 가족이 사라져 버려서 동전을 넣은 다음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는 거야.


우물쭈물 하다가 옆에 튀어 나온 것을 툭 건드리니, 철커덕 하고 자물쇠가 열리지 않는가?

내가 그래도 아-들 갈키는 선생이니까 눈치껏 했지, 촌 아지매였다면 을매나 쪽 팔렸겠나?


암튼 구루마 한대를 확보하고 커다란 왕진 가방같은 책가방을 구루마에 터억 올려놓고 의기양양하게 들어갈려는데,

안내 점원이 가로막는 거야.

이번에는 또 뭔가 싶어서 의아하게 쳐다 보았더니, 가방은 가져가면 안 된다나?

그러면 어디 두냐고 했더니 보관함에 두어야 한다는 거야.

매장의 물건이 많이 분실되어서 소지품을 가지고 가지 못하게 하는 모양이더구먼.


이번에는 뻔치 좋게 물었지 뭐. 보관함을 가르쳐 주는데, 또 돈을 넣어야 하는 거야.

이 눔의 도시는 인심이 왜 이렇게 사나운지. 동전은 다시 되가져 갈 수 있다는 안내말을 들으면서 가방을 무사히 넣고 장을 봤다네.


안동 촌놈 생전에 이렇게 큰 홈프러스 매장은 처음이라. 이리 두리번, 저리 두리번 하며 필요한 것들은 구루마에 실었지.

저녁을 해결하기 위해서 만두, 단감 한 봉지(거금3500원, 비싸지?), 닭다리 튀감 하나, 순대2000원어치(과식해서 밤새도록 씩씩거렸다)를 덤으로 사가지고 계산대에 오니 십민원이 넘잖여. 카드를 내미니까 회원카드를 달라네.


"오늘 처음 왔는데요. " 하고 이번에는 씩씩하게 말했지. 이름을 쓰고 주소 쓰니까 빨간 카드를 하나 주더군. 스티커를 모으면 선물을 준다네. 석달 동안 내가 이 집에 얼마나 자주 올지는 모르지만 하여튼 받아두었지.


낑낑거리고 차에 실으니 트렁크에 꽉 차더구먼. 옷

행거를 조립하여 세워 두고, 조명 스탠드를 켜고, 세면 도구를 제자리에 갖추어 두니 제법 사람 사는 집이 되었다네.


암튼 오늘 안동 촌놈 대구에 와서 어리버리한 경험 한 번 했네.

 이젠 홈프러스 자신 있게 갈수 있으니 나도 촌놈 티는 벗었겠지?

 

2002. 10. 산격동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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