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야기나누기/사는 이야기

사곡 일기1-사곡 부임

by 여왕벌. 2007. 9. 6.
 

학교로 출근한지 일주일이 지났다.

학교까지 50분, 적당한 크기의 산자락을 끼고 길 옆에 도열해 있는 과수원과

비닐 덮인 마늘밭을 따라 의성에서 동쪽으로 달리다 보면

옅은 푸른색 페인트칠 벗겨진 작은 교문에 도달한다.


벌써 노란 스쿨버스가 아이들을 내려놓고 서른 여덟명의 아이들은

발갛게 상기된 얼굴로 운동장을 뛰느라 여념이 없다.


"교감선생님 안녕하세요?"


아직 얼굴도 잘 익히지 않았는데도 아이들은 밝은 표정으로 인사한다.

집이 대구라서 교사 뒤 숙직실에서 지내고 있는 교무선생님이

벌써 난로불을 발갛게 피워 놓고 속속 들어서는 선생님들을 맞는다.


식구가 11명,


의성 고향 학교 사곡에서 정년을 맞으시는 교장선생님,

3,4학년을 담임하는 교무(내 파견 가 있는 6개월 동안 교감의 역할까지 하느라 엄청 고생을 했다)

1,2학년을 맡고 있는 경력 1년의 권선생(대구에 근무를 마다하고 고향을 찾아온 새내기 선생님),


5,6년 20명을 담임하는 학교 만기가 된 김선생(올해는 박사과정에 도전한다고 한다).

교지 발간에서부터 친목일까지 온갖 일을 즐겁게 맡아

작은 학교 선생님들의 일을 덜어주는 보건선생, 행정사무직 김양. 조리사,


앞가림도 잘 못하는 11명의 아이들을 다독거려 보살피고 있는 유치원 권선생,

아이들을 등교시키기 위해서 유난히 일찍 아침생활을 시작해야 하는 이기사,

학교 지키미로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학교의 궂은 살림을 살피고 있는 정기사.


11명의 식구들이 가족같은 정을 나누며 사는 작은 학교다.


텃밭(교지)도 있고, 해묵은 은행나무와 호두나무에서는

해마다 풍성한 가을 열매로 직원들의 하루 회식비를 보태고 있단다.


10명이 내일 졸업을 한다. 모두에게 상장과 상품이 푸짐하게 돌아가고,

장학금도 하나씩 다 받아간다.


얼굴도 잘생기고 심성이 착한 한 녀석은 근이양증이라는

근육이 굳어가는 불치병으로 휠체어에서 생활을 한다.

부모의 마음이 얼마나 찢어지겠나? 중학교에 통학하자면 무척 힘들겠지.


4시 반이면 퇴근을 한다.


늘 밤늦게 퇴근하는 습관에 젖어 있어서 너무 일찍 퇴근하니 이상하다.

퇴근 후에 할 일거리를 찾아봐야겠다.

 

 

2003.2.16 사곡에서


'이야기나누기 > 사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목마와 숙녀--추억하며  (0) 2007.09.16
안평학교의 가을  (0) 2007.09.07
안동 촌놈  (0) 2007.09.06
사곡 일기 2-일학년 면접  (0) 2007.09.06
사곡 일기 3-소주 넉잔  (0) 2007.09.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