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입학할 일학년을 면접하였다.
남자아이 둘과 여자 아이 둘.
남자 아이 한 녀석은 할머니가 보호자다.
아직 가정 형편을 물어보기에는 이를 것 같아서
유치원 선생님한테서 나중에 이야기를 듣기로 한다.
체구가 작은 두 녀석은 천방지축이다.
"안녕?"
먼저 말을 걸어도 시선은 엉뚱한 데를 두리번거린다.
병설유치원에 다녀서 학교 분위기에는 익숙할텐데도 연신 두리번이다.
이름을 물으니 한 녀석은 손가락만 빨고 고개를 외로 꼰다.
이름을 쓸 줄 아냐니까 한 녀석은 끄덕끄덕, 한녀석은 잘래잘래다.
여자 아이 중 하나는 입학 유예를 하고 싶단다.
네 명도 많다고 한 녀석이 유예라?
사실 며칠동안 유치원선생님 따라다니는 품이 남달라 보이기는 했던 녀석이다.
눈이 사슴같이 크고 포동포동 귀여운 여자 아이 명선이는
겉보기에는 멀쩡한데 가벼운 정신 지체가 있다.
식판을 잡는 법도 다시 깨우쳐 주고 숟가락도 쥐어주고,
여기 앉아라. 숟가락 잡아라. 일일이 챙겨주어야 한다.
일학년에 들어오면 25%의 부진아가 학력을 까먹을 것이라고 얘기하던
교무부장의 말이 떠오른다. 그 주인공이 바로 명선이다.
졸업식 행사에 바쁜 어제 아침에 명선이를 데리고 온 어머니가
다시 유치원을 일년 더 다니고 싶다하면서 일학년 원서가 아니라
유치원 원서를 가지고 왔었다.
어머니도 평범하지는 않는데 유예를 하는 것은 어떻게 주워들었는지 모르겠다.
"안녕하세요?"
엄마가 인사하라는 말에 명선이가 큰소리로 인사를 한다.
양호선생님과 행정 사무원의 눈이 둥그래진다.
"명선아, 너 방금 인사 했니?"
"아이구! 명선이 일학년 되려니 인사도 잘 하네."
큰소리로 말하는 걸 한번도 보지 못하였다니 그럴만도 하다.
명선이 지도 칭찬 말에 기분 좋은지 벙글벙글이다.
4명 중에서 한명이 유예를 하니 올해는 세명을 데리고 일학년을 꾸려야 한다.
아니다. 2학년 4명과 함께 복식 학급을 꾸려야 한다.
한 학년 5개 교과이니 복식학급 10개 교과의 교재연구를 해야 하는
시골학교 선생님은 고달프다.
그나마 1,2학년은 교과가 적어서 다행이다.
아직도 유치원 아이같은 덩치 작은 세 녀석이
올해 무럭무럭 잘 자랄 수 있도록 해야 할텐데....
2003.2.18 사곡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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