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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나누기/사는 이야기

그 놈마저 데려올까?

by 여왕벌. 2007. 9. 6.
 


이른 봄부터 집 앞의 방둑을 유심히 살피면서 다녔다네.

왜냐구?


방둑에 이웃한 배꼽할배 댁으로 내려가는 길섶에

몇년 묵은 멋진 엉겅퀴가 있었거든.


호랑가시처럼 가시를 많이 달고 있지만

풍성한 가지 끝에 붉게 핀 엉겅퀴 꽃이 얼마나 이쁜지.


히히! 올해는 그놈을 내 손아귀에 넣고 말리라 벼르고 있었거든.

배꼽할배가 삽작 가까이 있는 꽃을 캐 간다고 한소리 할 것 같아서

작년에는 군침만 삼키고 눈치만보고 있었지.


근데, 으히유!

그 멋진 꽃이 제초제에 폭삭 사그러져 버리고 말았으니.

뚝방에 석잠풀도 꽃대를 열심히 밀어 올리던 중에

잡초를 베는 낫질에 댕강 잘려버리고.


그랬기에 올해는 엉겅퀴가 오르기만 기다리고 있었거든.

드뎌 오늘 평소보다 30분 일찍 귀가하게 되어서

비닐 봉지와 삽을 들고 방둑으로 나갔지.


논둑을 위태롭게 가로질러 작년의 그 자리에 다다르니

아뿔싸! 한발 늦었지 뭔가.


우리의 부지런한 배꼽할배, 벌써 제초제를 뿌리다니!

불에 데여 오그라든 것 같은 엉겅퀴의 애처로운 모습이라니.

그제 일요일 행사만 없었더라도 엉겅퀴 몇포기를 챙길 수 있었는데.


에고 에고! 발 구르던 차에 이게 웬 횡재인가?

논쪽으로 떨어지는 풀 속에 위풍당당 우뚝 서있는 엉겅퀴!


큰 줄기에는 이미 꽃봉오리가 맺혀 있고

곁가지가 벌여져서 작은 항아리 정도로 풍성하게 어우러진 모습이라니.


차마 캐 옮기지 못하고 그 옆의 작은놈 서너포기만 퍼왔다네.

끈끈이대나물이 소복하게 자리 앉은 마당 한 귀퉁이에 심어두었는데,

올 여름에는 창밖으로 붉은 엉겅퀴꽃을 볼 수 있다니 벌써 설레이네.


그런데 사실은 둑 옆에 남겨둔 그 엉겅퀴도 걱정이지 뭔가.

할배가 호박이라도 몇포기 올리려고 또 제초제를 치면 워쩐다지?

그 놈마저 데리고 올까 고민 중이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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