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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나누기/사는 이야기

식물분류학회 구두발표를 마치고

by 여왕벌. 2023. 2. 6.

2023. 2. 2.

긴장을 하긴 했나 보다.
발표 시간이 다가오자 손바닥이 축축하다.
휴식 시간에 안동대 j교수님이 와서 떨리지 않느냐고 편안하게 하라고 농담을 하면서 긴장을 풀어준다.
혹시나 익숙하지 않은 자리에서 소외감을 느낄까 싶어서 언제나 챙겨주는 참으로 sweet한 분이다.

"지금은 떨리지 않는데 연단에 올라가면 떨 것 같은데요."

교사 시절에는 도내 교장들과 여러 학교 연구부장들이 모인 연구학교 연구보고회에 자리에서도
차분하게 연구 결과 발표를 해서 잘 했다는 칭찬도 들었고,
교장 임기 중에는 학부모님들이나 여러 행사에 참석하여 인사말이나 축사를 할 때에도 떨리는 일이 없었는데
그건 나의 공간이라는 안정감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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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시 20분 성균관대학교 자연과학대학이 자리한 수원에 도착하여
학술발표회장인 삼성학술정보관 오라토리움 입구에서 등록을 마치고 대회장에 들어가니 아직 도착한 회원들이 거의 없다.

열정의 이십대 이후 대학 캠퍼스에 들어설 기회가 흔치 않았는데
젊음이 용틀임하는 대학 캠퍼스에 들어서면 다시 젊어진 듯 발걸음이 경쾌하고 괜스레 설렌다.

시작 시간이 다가오면서 점점 자리가 채워지자 서로들 인사를 나누느라고 발표회장 안이 부산해진다.
코로나 때문에 3년만에 대면으로 열리는 학술대회라 오랫동안 삭혀둔 허기진 이야기를 푸느라고 그 반가움들이 더한 것 같다.

학회 회장님, 교수님들과 인사를 나누는데 전혀 뵌 적이 없던 분들이 다가와서 인사를 청한다.
그 동안 내 블러그나 유선상으로 연구에 필요한 정보를 요청해 와서 도움을 드렸던 분들이
그 도움을 요청했던 본인임을 밝히면서 감사하였다는 인사를 하는 것이다.

사람들과의 인연이 이렇게 고마움으로 연결되어 진다면 그 보다 더 다행스러운 일은 없다.


1시 30분부터 시작된 개회식은 회장과 차기 회장의 인사에 이어
고 이우철 교수님이 후학들을 위해 기금을 세워주신 죽파식물분류학상 제 2회 수상자로 성균관대학교의 김승철교수가 수상을 하고 회장단 소개와 인사로 1부 개회식이 끝났다.

 

 


이어서 특별강연과 초청강연이 끝나고 일반회원 세션 순서가 되었다.
내 발표는 첫 번째 였다.

음~! 내 발표는

200여 명 가까운 학회 학자들과 학부생들 앞이라 좀 긴장이 되었지만 떨리지는 않았는데 예상대로 시간이 많이 부족하였다.
앞부분 내가 식물을 살피게 된 계기와 식물을 찾아다니면서 어떻게 바라보고 정리하였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에피소드와 함께 섞어서 이어나가다 보니 시간이 많이 소요되어 버렸다.

ppt 장면마다 차분하게 시작하고 마무리하지 못하고 서두도 없이 툭툭 끊어지는 발표가 된 것 같다
이야기할 내용은 제법 많은데 시간에 신경 쓰다보니 조리있게 진행을 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다들 딱딱한 학술 강연을 듣다가 일반회원이 식물에 빠진 가벼운 이야기에 흥미로워 하면서
빙그레 웃으며 반응해 주는 표정을 읽을 수가 있었다.

뒷부분의 다도해산들깨 신종 연구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 갈 때에
분위기를 좀 풀자고 우스갯소리 한 마디를 던졌다.

"보길도와 금오도에서 만났던 이상한 녀석의 연구를 위해 가까운 안동에 계시는 j교수님이 아니라
멀리 창원에 있는 c교수님을 선택하였습니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다들 무슨 말인가 싶어서 다음 말을 기다리는데,

"얼굴과 젊음에서 j교수님이 밀렸습니다 "

다소 묵직한 분위기의 학술대회에서 난데없는 j교수에 대한 디스 발언에 객석은 빵 터졌고
한참 웃음소리가 이어지면서 한결 부드러운 분위기가 흘렀다.

우스개를 섞으면서 분위기를 좀 풀어봐야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내 입에서 나온 말은 전혀 생각하지 않던 말이었는데
다행하게도 위험 수위를 넘지 않는 선에서 농담의 내용이 충분히 전달되었는 것 같다.


j교수와 교류는 꽤 오래 전으로 흰꽃광대나물이 인연이 되어서 자주 연락을 하고 지내던 사이였고
아주 재치 있고 밝은 성격이라 그 정도 농담은 농담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분이라 편하게 발언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식물분류학회에 참석이 이 번이 세 번 째였는데 j교수는 그 때마다 서먹해 할까 봐 일부러 챙겨주고 학회 회원들께 소개도 해주며 배려해 주던 분이었다.

시간이 더 있었다면 미기록종과 신종 발견 과정에 있었던 좀 더 재미있는 내용으로 이야기를 풀어갈 수 있었지만
시간이 초과 되어 마무리도 제대로 못하고 서둘러 마치게 된 게 아쉽긴 하였다.

내 우스갯소리 덕분(?)에 c교수는 저녁 식사 시간 내내 젊고 잘 생긴 c교수라고 불리며 놀림감이 되었고,
c교수한테 밀린 j교수는 스스로 자폭하는 발언으로 좌중을 웃기면서 두 분이 저녁 술자리의 술 안주가 되다시피 하였다. (사실 j교수님도 표정이 밝고 웃는 모습도 보기 좋은 호감형으로 준수한 분이다)


30년의 식물에 대한 내 이야기를 20분으로 다 풀어낼 수 는 없었지만
식물학에 발을 들인 젊은 학부생들에게 나의 이야기가 조금의 자극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발표를 끝낸 후 마지막에 j교수가 나와의 인연과 나의 식물에 대한 애정에 대하여 좀 더 보완을 해주는 발언이 있었다.

"~~중략~~남선생님은 식물탐사 나갔다가 교통사고로 차를 폐차까지 하였는데도 며칠 후 또 식물을 찾아 나서는 걸 보고, 어떤 일이든 즐기는 사람에게는 당할 수가 없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식물에 대한 미친 탐구열 덕분에 전공자들 앞에서 이렇게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었다.
올해도 산천을 쏘다니면서 새로운 식물을 만나러 다니겠지만 두 군데 기관의 프로젝트도 수행해야 한다.
올해 처음 참여하게 된 남도 섬지역의 식물상 조사라는 새로운 수행 과제에 대한 기대로 빨리 봄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30년 동안 지독하게 식물 앓이를 하고도 새로운 장소나 새로운 식물 앞에 서면 설레고 기쁘다.
식물에 대한 내 갈증은 아직도 충만하지 않은 모양이다.

앞으로도 내 건강이 허락하는 동안 식물에 대한 여왕벌의 뻘짓과 호작질은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