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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나누기/사는 이야기

이제 자유의 몸이 되다

by 여왕벌. 2019. 3. 2.

2019. 3. 1.


이제 교직생활을 마무리하고 홀가분하게 자유인이 되었다.

40년 11개월. 참으로 길었지만 그 세월 속의 편린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난 듯

옛 일도 오늘 같고, 며칠 전의 일도 오래 전 기억 속의 일처럼 느껴진다.




퇴임날이 다가 오면서 퇴임 후의 시간에 대한 기대와 설레임으로 즐거운 기분이 가득 차 있었더랬다.

퇴임에 대한 아쉬운 마음도 있었지만 몇 달을 남기지 않고서는 빨리 시간이 지나 홀가분한 몸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더 컸었다. 

1년 전에는 선배 교장의 퇴임을 부러워하던 그 마음을 이제사 무사한 퇴임으로 온전하게 보상 받는 기분이다.


퇴임을 앞 둔 일년의 시간 동안 혹시나 어떤 일이 생기지 않을까 불안한 마음도 있었는데,

자동차 사고를 당하여 조금 다치고 차를 폐차하는 사건 이외에

다행하게도 학교 아이들에게 나쁜 일은 생기지 않은 것도 축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첫 부임지 병아리 교사 시절,

학교 옆 자취방으로 밤이면 놀러와서 숙제도 하고 장난을 치던 개구쟁이 녀석들이 이제는 중년의 나이가 되었을 것이고.....

교대부설초등학교 근무 시절에는 교생 지도와 교재 연구, 아이들 과제나 일기장에 일일이 글을 남겨주다 보면

매일 밤 9시나 10시가 넘는 늦은 시각에 퇴근하면서도 힘들다 생각을 안하고 아이들과 함께 하는 자체가 즐거움이 었더랬다.


부설초등학교에서 가르친 그 때의 제자가 마지막 학교에 교사로 전입해 와서 함께 근무하게 된 것도 나에게는 큰 의미가 있는 일이었다.

좁은 교직사회라 내가 남긴 발자국과 평가가 언제나 나를 따라 다닐 거란 생각에 항상 긍정적이고 수용적이 자세로 최선을 다 했다.


 5남매의 맏이였던 나는 농사를 지으시는 부모님의 경제적인 부담을 덜어드리기 위해서는 교대를 갈 수 밖에 없었다.

2년제인 교대에 가기 싫다고 울기도 했지만 돌이켜 보면 교대를 간 것이 정말 최선의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 덕분에 동생들 모두 대학교에 갈 수 있었으니 부모님 힘도 덜어드릴 수 있었고

퇴임 때 까지 동생들의 경제적인 등받이 노릇을 할 수 있었다는 게 참으로 다행스럽기도 하다.

내 퇴임까지 부모님이 살아계셨더라면 정말 기뻐 하셨을텐데.....

그래도 엄니는 내가 교장으로 근무하는 것을 보고 가셨으니 그나마 위안이 되지 않았을까 한다


마지막 임지였던 안동의 작은 시골 학교,

4년 동안 정이 들었던 학교 아이들과 마지막 작별 인사를 나누려고 단상에 오를 때 까지만 해도 가볍게 인사말을 하려고 생각했는데,

작별의 말을 시작하자 울컥하며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하였다. 아이들은 엉엉 소리내어 울고 직원들도 고개를 숙였다.

내가 왜 이러지 하면서 눈물을 닦으며 아이들과 간신히 작별 인사를 마쳤다.


생각지도 않았던 첫번 째의 눈물이었다.


마지막 학교에서 함께 근무했던 모든 사람들한테 고마움의 표시로 최고의 한정식 한끼를 함께 하고

큰 꽃다발을 가슴에 안을 때에도 아쉬움 보다는 축하를 받는 행복함이 더 컸고

40년이 넘는 세월 봉직에 대한 보상으로 황조근정훈장을 받을 때도 즐거운 마음으로 축하를 받으며 감사하였다


2월 28일 모든 짐을 정리하고 직원들의 배웅을 받고서 학교 밖으로 차를 몰고나오는데

갑자기 훅 차오르는 격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큰소리로 울고 말았다.

터져 나오는 울음이 스스로 당혹스러우면서도 왠지 모를 허전함으로 꺼이꺼이 울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생각지도 않았던 두번 째의 눈물이었다.


무사히 퇴임하여 고맙고 행복한 기분으로 포장되어 있던 그 속에

이제는 학교를 떠나야한다는 아쉬움이 깊게 숨어 있었던 모양이다.


22살 이후 평생의 세월을 몸담았던 교직을 무사히 마감할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이다.

이제 카메라를 들고 온 세상 좁다고 훨훨 날아다닐 계획을 세워야 하겠다.


나를 이 자리까지 있게 해 준 선생님, 학생들, 학부모님들, 선후배교육자님,

나와 교직을 매개로 인연을 주고 받은 모든 분들께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 전해드립니다.

저도 새로운 제2의 인생을 행복하게 시작하겠습니다.


그동안 행복했습니다.

모두 감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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