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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나누기/사는 이야기

청량산 할머니

by 여왕벌. 2015. 6. 11.

2015. 6. 초순.

 

오수유 때문에 600m 정도의 등산로를 낑낑거리고 올라야 했다.

산 중턱 외딴 집 옆 일구어 놓은 밭 주변에 오수유나무를 봤다는 말에.

 

설마? 했다. 청량산에는 쉬나무가 자생을 하는데 아마도 쉬나무를 오동정한 게 아닌가 싶었다.

역시 내 짐작대로 쉬나무였는데.....

 

오수유는 중국산으로 주로 민가에서 집 주변에 심어 두는 게 고작인데

소엽이 좀 작고 수가 더 많지만 쉬나무와 흡사하여 구분이 어렵다.

오수유 또한 내가 조사해야 할 대상이었기 때문에 혹시나 기대를 하였더니만 일 없이 다리품만 팔았다.

 

그 외딴 집에서 참 인자해 보이는 83세 할머니를 만나서 한참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진을 찍어도 좋겠냐고 양해를 얻고 몇 장 사진을 담았다

 

 

 

청량산 중턱에 두 집이 이웃하고 있는데 사진 속의 할머니와 함께 이웃에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두 내외분이 계시는데

옆집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병환 중이라 병구완 하시느라고 며칠에 한 번씩만 산 중에 머무르신단다.

 

오늘은 옆집 할머니가 계셔서 함께 놀다가 이제 집으로 들어 오는 중에

늦은 시간에 산중에 얼쩡거리는 나를 발견하게 된 모양이다.

 

나는 또 내 등산 지팡이를 할머니네 마당가에 두고 깜빡 잊고 와서 그리 가야 했는데

할머니께 인사를 하고 말을 붙여드리니 무척 반가워 하신다.

 

옆집 할머니가 작년까지는 동동주를 만들어서 하산하는 등산객들 목을 추기며 땀을 식히게 하기도 했는데

이젠 그것도 힘 들기도 하고 할아버지가 편찮으셔서 못한다고 한다.

지난 해 9월 쯤  "동동주 팝니다" 하는 팻말을 보았더랬는데 어쩐지 그 나무 팻말이 안 보인다 하였더라니.

 

 

 

할머니는 83세의 나이에도 참으로 정정해 보였는데

3년 전 80세에 돌아가신 엄니 모습이 전해져 와서 왠지 자꾸만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수년 전 인간극장에 일주일간 청량산 할머니를 다큐로 취재를 하여 방영되었던 기억이 있는데

그 프로그램의 중인공이던 할머니가 바로 이분이다. 그 때와 별로 달라 보이지 않는다 했더니 이젠 몸이 많이 힘드신단다.

 

혼자 적적하시지 않느냐니까

마당에 나와서 등산객들 보기도 하고 텃밭을 일구기도 하니 크게 적적한 것도 없으시단다

자제분이 강원도로 경기도로 멀리 있어서 자주 들여다 볼 처지가 안 되신다고. 그리고 이 곳이 마음 편하다신다

 

 

 

할머니 옆에 줄에 매달린 삭도는 생필품이나 무거운 짐을 산 아래쪽에서 실어서 올려주는 장치인데

이젠 그걸 작동시킬 힘도 없고 도와줄 옆집 할아버지도 안 계셔서 한동안 멈추어 있다고 한다.

 

험한 산길을 오르내리기 힘들텐데...하고 걱정을 했더니

요 아래 찻집 있는데 까지 택시를 불러서 내려 가신다고 한다

 

 

 

마당 한 켠 텃밭에 감자와 채소가 심겨져 있는데 밭이 엉망이다.

이른 아침에 멧돼지가 이렇게 망쳐 놓았다고 한다.

멧돼지가 겁이 나지 않는냐니까 해롭게 하지 않으면 덤벼들지 않고 오히려 도망간다고 괜찮단다

 

 

이 가뭄에도 집 뒤안에서 물이 스며나와서 도랑이 질벅한데

그 주변에 물꽈리아재비가 한창 노랗게 꽃을 피우고 있다.

그 도랑마저 멧돼지가 마구 짓삶아 놓았다.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가 일어서려니 시원한 물이라도 한 모금 마시고 가라 붙잡는데

내려갈 길 서둘러야 해서 그냥 돌아서야 했다.

아마도 심심하여 조금이라도 더 말동무 하고 싶으셨던 게다.

 

 

집으로 들어가시는 할머니 모습이 왠지 짠하여서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할머니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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