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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나누기/사는 이야기

근무지를 옮기다

by 여왕벌. 2015. 3. 3.

내 교직의 마지막 자리에 터를 잡았다.  

안동에서도 가장 먼 자그마한 시골 학교다.

 

직전의 학교는 가장 시설이 좋은 신축 건물이고 조경 또한 멋지게 잘 되어 있는

북부지역에서는 최고의 환경을 자랑하는 학교였다. 그 곳에서 1년 반을 근무하였다.

학부모들의 관심도 많고 아이들 또한 밝고 인사도 잘 하는 그런 학교.

그 학교는 아마도 누구나 근무하길 원하는 소위 인기 있는 학교였다.

 

그 환경이 좋은 학교에 근무하게 된 이유는 나 말고는 갈 수 있는 조건이 되는 분이 없었기에

할 수 없이 전보 희망을 하게 된 이상한 경우였었다.

그렇다고 그 곳이 힘들거나 실망스러웠던 건 아니고 부러운 시선을 받으면서 학교를 경영했더랬다.

 

시골에서 자라고 지금도 시골에 살고 있기 때문인지 몰라도

나는 시골의 아이들과 마지막을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전교생 13명이 전부인 이 곳. 두 학년씩 복식 수업을 해야 하는 작은 학교.

퇴계선생님의 고향, 한국정신문화의 산실인 이 곳 도산에서 마지막 마중물을 자아 올리려고 지원을 하였다.

 

이제 이틀 째, 아이들의 주거 환경을 살펴 보려고 4시 30분에 하교하는 몇 녀석을 태운 스쿨버스를 타고 나가 보았다

봉고 버스 한 대가 겨우 다닐 수 있는 산 중턱에 자리잡은 1학년 ㅁ○이는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와 함께 산다. 아버지는 시내에 직장을 가지고 있어서 데리고 갈 처지가 안 된단다.

눈이 많이 내린 후면 스쿨 버스가 올라가지 못하여 산 아래까지 걸어 내려 가야 한다.

 

아직 만 세살짜리 유치원생 @@이는 엄마 전화 번호를 야무지게도 읊어댄다.

애기 티도 벗지 못한 녀석이 5월부터 저녁 돌봄교실에 있도록 희망한단다.

다들 골짝 골짝 꼬불꼬불 길을 위태롭게 올라서야 숨돌릴 수 있는 곳에 산다

 

지금 7시. 나는 아직 학교에 있다.

저녁돌봄 교실에서 아이들이 어떻게 지내고 집에 까지 어떻게 귀가하는 지 확인 하려면 9시가 넘어야 한다.

 

야간 돌봄교실이 진행되고 있는 학교는 저녁 7시 인데도 아이들 소리 재잘거린다.

저녁 관악 프로그램으로 플룻의 섬세한 선율과 트럼본의 묵직한 저음이 운동장으로 파랗게 번져나간다.

 

4년 동안 이 아이들을 위하여 무엇을 해 줄 것인가.

지금부터 계속 숙제를 풀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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