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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나누기/사는 이야기

함박눈 내리다

by 여왕벌. 2010. 12. 28.

2010. 12. 28.

 

아침에 문을 여니 마당이 하얗다.

새벽까지 말갛더니 6시 쯤 눈이 내렸나 보다. 아니 한창 눈이 내리고 있다.

 

모처럼 집에 들른 동생은 어제 밤길로 영양까지 들어가지 않았던 걸 후회하고 있다

업무 차 영양 산골까지 가야 하니 눈길이 녹녹하지 않을 건 뻔할 터라 동생은 체인을 감느라 분주하다.

 

 

녹의를 벗은 앞산도 하얗게 솜옷을 입기 시작하고 있다.

그리 많은 양은 아니지만 출근길 걱정보다 올해 그럴 듯하게 내린 눈이 첨이라 반가움이 더 앞선다.

아직도 마음만은 어린 청춘인가 보다. ㅎㅎ.. 

 

  

 

눈이 녹기 전에 얼른 카메라를 들고 마당으로 나서서 화살나무 열매에 시선을 맞추어 본다.

화살나무 선홍색 열매가 하얀 눈 모자를 쓰더니 더 홍조를 띈다.

 

  

 

 

담벽에 매달린 담쟁이덩굴 열매도 눈으로 인테리어를 하였다.

 

 

어수리 마른 꽃자루에도 눈꽃이 피고

 

가을 흔적이 남은 화단 귀퉁이에도 대죽통이 눈 모자를 쓰고 있다.

 

대문간 감나무와 모과나무도 조금씩 하얗게 솜을 쌓고 있다.

 

학교에서도 눈이 쌓여서 스쿨버스를 운행하기 어렵다고 연락이 온다.

오늘 방과후 학교 프로그램 일정을 모두 취소하라 일러놓고 옷을 껴 입고 마당으로 나선다.

수도 계량기가 올해도 어김 없이 밍크 이불을 덮고 있다. 겨울이면 계량기가 동파할까 싶어서 엄니는 매년 밍크이불을 덮어 둔다.

 

 

대문을 나서면 둑 위로 올라가는 비탈이 있어서 눈을 쓸어 줘야 한다.

내 그냥 출근하고 나면 딸년 차가 미끄러질까 싶어서 연로한 엄니가 눈을 쓸기 때문에 내가 미리 쓸어 두어야 한다.

허리도 펴시기 어려운 울 엄니는 아무리 그냥 두라 해도 부득부득 힘들게 눈을 치우신다. 그게 부모 맘인 것을.

 

 

 

대충 비질을 하니 동생이 몰고 나간 차바퀴 자국만 하얗게 다져져 남아 있다.

차에 시동을 걸고 집을 나서니 뭐 그리 미끄럽지는 않은 것 같다.

그래도 조심스럽게 개천 다리를 건너니 신신이발관 옆 버드나무도 눈을 얹고 길목을 지키고 서 있다.

 

 

 

큰도로는 오가는 차들로 눈이 다져져서 도로가 매끌매끌하다.

뒤쪽에서 차가 가까이 다가오니 긴장이 된다.

 

내리막 길에 봉고 버스 한 대가 바퀴를 하늘로 쳐들고 누워 있다.

속도를 내지 않아서 많이 다치지는 않았겠지만 얼마나 놀랐을꼬!

 

사이드 브레이크를 잡고서 속도를 조절해 가면서 학교에 까지 25분 출근길이 50분 걸려 도착하였다.

교사 앞 가볍게 눈을 덮은 연필향나무 숲에는 새소리만 재잘재잘 요란하다.

 

 

 

 

 

여름의 미련을 떨구지 못한 단풍나무 잎새에서 솜이불처럼 포근한 눈이 한 보시기다.

 

 

아이들이 없는 운동장에는 미끄럼틀이며 정글짐이며 놀이터도 저 혼자 심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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