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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나누기/사는 이야기

호드기를 불면서

by 여왕벌. 2010. 4. 30.

 2010. 4. 30.

 

퇴근을 하려고 자동차 시동을 거는데 차안에 껍질이 마른 버드나무 피리가 눈에 들어 온다.

어제 과학 행사 체험 부스에서 가져온 물오른 버드나무 껍질을 비틀어 만든 호드기다.

 

 

 

과학의날 기념식을 마치고 체험 부스를 기웃거리는데 호드기 만드는 곳이 얼른 눈에 들어 왔다.

어릴 적 버드나무나 미류나무 가지로 만들어 불던 호드기라 너무 반가워서 껍질 하나를 집어 들었다.

 

한쪽 부분의 껍질을 살짝 긁어 내고 호드기를 만들어서 철딱서니 없이 호뜩! 호뜩 불었다.

점잖으신 어른 들 사이에서 5학년 아지매가 품위 유지도 못하고 말이다. ㅎㅎ

 

호드기를 불면서 행사장 안을 돌아다니니까 나이 값을 하라고 한 마디씩 한다.

그러면서도 다들 어디서 만들었냐고 고개를 돌린다. 너나 나나 마음들이 다 똑 같은 모양이다.

   

 

 

내 어릴 적 봄 날,

학교에서 돌아오면 바가지나 보자기 하나 허리춤에 꿰어차고

동네 친구들이랑 쑥을 뜯거나 냉이를 캐러 밖으로 나갔다.  

 

 

 

사실 냉이 캐는 건 핑계이고 띠 꽃 이삭이 볼록하게 맺힌 뽑피도 뽑아 먹고

뒷산 무덤가에 뽀얀 털 뒤집어 쓴 솜양지 뿌리도 캐먹는 재미가 쏠쏠하기 때문이다.

솜양지 뿌리는 <빼기>라고 해서 어린 싹의 뿌리는 달착한 맛이 먹거리로 그만이었다.

 

 

 

 

먹을 거리가 안 보이면 쑥을 캐러 가져간 까만 접이식 쇠 칼로 버드나무 가지를 잘랐다.

적당한 굵기의 버드나무 가지는 물이 올라서 호드기를 만들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먹거리와 놀거리가 마땅히 없었던 어린 시절에는 호드기가 재미난 놀거리였다.

 

어린 버드나무 가지를 양손으로 잡고 앞뒤로 비틀듯이 돌이면 가지 속살과 껍질이 분리된다

껍질을 통 째로 잡아당기면 뽀얀 속 가지가 빠져나오면서 원통의 껍질이 만들어진다.

 

 

 

 

껍질의  한쪽 수피를 살짝 벗기고 지근지근 눌러서 피리 주둥이 처럼 납작하게 만들면 호드기가 완성된다.  

너무 납작하게 붙어도 안되고 너무 벌어져도 소리가 제대로 나지 않는다.

  

길다랗게 껍질을 뺀 호드기에 구멍을 몇개 뚫으면 멋진 악기가 되어 친구들과 신나게 불고 다녔었다.

호뜩~~! 호뜩~~!

빼에~~~~~!

 

긴 것, 짧은 것, 가는 것, 굵은 것, 길이와 굵기에 따라 가는 소리, 굵은 소리, 높은 소리, 낮은 소리...나는 소리도 다양하다.

각자 개성있게 호드기를 만들어서 친구들이랑 함께 불어제끼면 멋진 길거리 음악회가 되었는데 ....

 

 

 

오늘 퇴근하는 길에 학교 앞 개울 가에서 갯버들 나뭇가지를 잘라 왔다. 

껍질에 칼자국을 내고 비틀어서 빼내려는데 아이구야~! 아무리 용을 써도 꼼짝도 안 한다.

어떻에 껍질을 찢지 않고 깔끔하게 빼낼 수 있었을까? 결국 칼로 좌악 그어서 잘라 벗겼다.

잘린 껍질을 도르르 말아서 불어 보니 빼에~~! 호뜩! 옥타브 높은 소리가 경쾌하다.

 

옆에서 지켜 보시던 엄니가 밤에 피리를 불면 뱀이 들어온다고

별 짓거리를 다 한다고 타박이시다. 내가 좀 철딱서니가 없긴 하다.

 

내일 호드기 몇 개를 만들어서 아이들한테 선물로 주어야 겠다.

녀석들 호드기를 받아들고 어떤 표정들을 지을까?

우리 학교 아이들은 호드기를 만들 줄이나 알까? 아니 불어보기나 했을까?

 

온 학교가 홋뜩~ 호옷뜩~! 빼에~~~!

멋진 음악 시간이 되겠지.

 

2010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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