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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나누기/사는 이야기

풍산 정미소

by 여왕벌. 2010. 2. 28.

2010.2. 27.

 

시골 동네에서 멀찍이 붉은 양철 지붕을 한 큰 건물이 보이면 대개가 정미소였다.

신신이발관 모습을 담으면서 아버지를 따라 다녔던 정미소가 어떻게 변했을까 하여 한 번 가보려고 벼르던 차에

날씨도 꿀꿀하고 꽃 길 나서기도 마뜩치 않아서 정미소를 보러 주섬주섬 카메라를 들고 나섰다.

 

예전에는 집 가까이 정미소가 있었다. 탕!탕!탕! 소리 요란하면 정미소에서 쌀 도정이 시작된다. 

풍산 소재지에도 몇 군데 정미소가 있었는데 다 사라지고 정기정과 장터에 두 군데가 남아 있다고 한다.

<정기정>이란 지명은 <정거장>이 변한 이름으로

예전에 안동에서 예천으로 지나는 철길이 풍산읍을 통과하고 있었는데 아마 정거장이 여기 있었던 모양이다.

조금 떨어진 마을은 <역마> 라는 지명을 가지고 있다. 역이 있던 마을이란 뜻이다.

 

내 어릴 적에는 철교를 받치던 시멘트 기둥이 군데 군데 남아 있었는데, 다 부수어 버려서 지금은 흔적도 없다.

다만 두드럭한 철길 언덕이 남아 있어서 철길이 어디로 지났었는지 짐작하게 해 준다.

정기정 마을 남쪽으로 지나던 철길 언덕은 새 도로가 나면서 다 사라져 버렸다.

 

담벼락에 가까이 차를 주차하고 정미소로 들어서는데 안쪽 멀리서 나무를 켜는 소리가 요란하다.

여긴 정부양곡을 도정하는 정미소인가 보다. 외인출입 엄금이라...

근데 나는 어린아이나 노인에 해당 사항이 없응게 출입자 제한 조건에 결격 사유가 없겠제.

 

 

 

사무실 바깥 벽에 붙어 있는 <증산보국>이란 글자다. 구호성 짙은 이런 것이 아직도 남아 있다니 재미있다.

쌀을 많이 생산하는 게 나라를 부강하게 한다는 뜻이겠지. 쌀 생산을 장려하는 국가 정책이 네 글자에 담겨 있다.

지금은 쌀 생산에 비하여 소비량이 줄어서 오히려 쌀을 많이 소비를 많이 하자고들 난리인데...

 

 

 

내 어릴 적에는 도시락을 싸지 못하는 친구들도 많았다. 생활이 어려운 친구들은 찐 분유나 강냉이 죽을 주었다.

강냉이 죽을 받을 수 있는 분홍색 표가 있었는데, 그 강냉이죽이 왜 그리 맛 있어 보이던지...

친구에게 돈을 주고 그 표를 얻어서 강냉이죽을 먹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옥수수빵을 모두 배식해 주었는데, 금방 쪄서 말랑말랑한 옥수수빵이 참 맛이 있었던 기억이 난다.

그 시절 뽀얀 쌀밥 도시락을 싸 오는 친구들은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그런 시절은 증산보국이 필요하였을 거다.

지금은 오히려 쌀 소비를 장려하기 위하여 쌀을 가공한 식품을 많이 개발하는 시대가 되었다.

 

증산보국이란 글귀 하나로 잠시 어린 시절 점심도시락을 떠올려 보았다.  

사람 기척이 없길래 슬금슬금 정미소 안을 둘러 보면서 얼굴이며 전신에 뽀얀 분가루를 덮어쓴 정미소 아저씨를 되살려 본다.

 

정미소 안은 친근한 당가루 냄새가 났다. 당가루는 벼 껍질을 벗겨낸 속껍질 가루다.

지금에야 건강식으로 현미밥을 먹는 세상이지만 그 때는 무조건 뽀얗게 껍질을 벗겼다. 

당가루는 소 죽 끓일 때 한 바가지씩 넣어주었는데 그 때문에 소죽 끓는 냄새가 무척 구수하였다. 

지금은 현미 가루를 벗겨서 건강식으로 먹을 수 있는 간이용 도정기계도 있는데, 그 때는 사람보다 소가 더 웰빙하는 시대였던 거다.

 

 

탈탈탈~! 돌아가던 벨트 바퀴다.  벨트가 연결된 바퀴가 돌면서 도정 기계가 움직인다.

 

뽀얀 쌀이 촤르륵 쏟아져 나오는 곳 

 

이 벨트에 옷자락이나 손이 감겨버리면 큰 사고가 난다. 자칫 한눈 팔다가 사고로 손을 잃는 경우도 생긴다.

 

 

 

대문을 들어 설 때 짖어대던 진돌이 녀석이 몇 번 짖더니만 지 할 일 다 했다고 집에 들어가서 딴전이다.

아무래도 쥔한테 직무유기로 혼 좀 날 것 같은디....  

얌마~! 진돌이. 인석 니 오늘 주겄쓰. 외부인 출입 단속 못 혔응게, 오늘 니 국물도 읎다이. 

 

 

정미소 마당에 백엽상이 왜 있는지 모르겠다. 옆에 놓인 가마솥을 보니 진돌이 밥을 끓여주는 것 같다.

 

나오려는데 어르신 한 분이 쳐다본다.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내게 좀 경계를 보인다.

먼저 인사를 하고 전에 있던 친구 아버지가 운영하시던 정미소 안부를 물으니 벌써 없어진지 오래란다.

친구 아버지는 여직 살아 계신데 큰 딸이 아마 병으로 세상을 떴다는 소식을 들었단다.

그 친구가 세상 떴다는 소식에 잠시 먹먹해진다. 아직 살날 많았을 텐데...어째 그리 빨리 갔는고...

 

여기는 정부 양곡을 도정하고 풍산 읍내에 일반 양곡을 도정하는 정미소가 따로 있단다.

인사를 하고 장터에 있다는 작은 정미소에 들렀다. 가까이 가는데 참새 떼 재재거리는 소리가 요란도 하다.

전형적인 빨간 양철 지붕의 정미소 모습이다 

 

 

 

 

참새방앗간이라더니 정말 참새 떼가 대단하다.

문 없는 입구에 들어서는데 후루루~~! 참새들이 천정 위로 날아 오른다.

날아 오른 참새들이 공기창 창살이며 지붕꼭대기에서 기웃기웃 망을 보고 있다.

 

 

쌀뒤주가 재미 있다. 슬쩌기 아랫쪽 판때기를 빼는데 쌀이 쏟아져서 깜짝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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