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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나누기/발길 따라

봄비 오는 날 고운사를 찾아서

by 여왕벌. 2010. 3. 1.

2010. 3. 1.

 

올 겨울은 유난히도 눈이 많고 비도 자주 온다.

사흘 연휴 중 마지막날인 삼일절에도 종일 비가 내린다. 

시에서 주관하는 기념식에 눈도장만 찍고 가까운 고운사 숲을 기웃거린다.

 

사찰 진입로는 붉은 소나무가 봄비를 맞으면서 우렁우렁 서 있다. 비포장 도로라 더 정감이 가는 길이다.

이 매력적인 길이 영원히 포장되지 않기를 바란다. 지나는 차 바퀴 따라 작은 물도랑이 생겨서 졸졸 물이 흐른다.

 

 

풍치보안림 이란 글씨를 새긴 시멘트 기둥이 진입로 입구 양쪽을 장승처럼 지키고 있다.

내 나이 보다 더 오래 되었을성 싶은 시멘트 기둥을 아직도 세워두고 있는 게 신기하다.

 

 

진입로 오른쪽 숲에는 산책로가 있는데 고운사까지 2km 남짓한 거리의 오솔길은

작은 꽃과 나무를 관조하면서 산책을 할 수 있는 아름다운 길이다.  

나는 사찰을 방문하는 차들이 먼지를 풀썩이면서 지나는 넓은 길보다 산길을 더 좋아한다.

 

산책로 중간에 누군가 이끼 낀 돌을 모아서 탑을 쌓아 두었다.

돌탑 옆에 심심한 올괴불나무가 부풀린 꽃망울에 조롱조롱 빗방울울 매달고 돌탑을 간지르고 있다.

부풀린 정도를 보니 봉정사 뒷산의 올괴불보다 며칠 더 늦게 개화를 할 것 같다.

 

 

 

 

잦은 눈과 비로 사찰 계곡은 여름처럼 수량이 넉넉하다. 힘차게 흐르는 계곡물을 보니 마음이 푸근하여 부자만 싶다. 

 

 

 

 촤르르~~~! 내리던 비가 싸락눈으로 변하여 가랑잎에 싸락눈 떨어지는 소리가 요란하다.

 

 

 

 

평소에 지나쳐 보던 이 일주문을 담아와서 보니 참 아름답다.

지붕이 날개를 펼치고 막 비상을 시작하려는 듯 날렵하다. 현판에는 조한문이라 되어 있다.

청량사나 봉정사 일주문은 그냥 평범하였는데 고운사의 일주문은 퍽이나 아름답다는 느낌을 들게 한다.

 

몸체에 비하여 지붕이 유난히 커 보여서 그런가? 귀여운 느낌마저 든다.

지붕이 너무 커서 4개의 보조 기둥이 지붕의 무게를 받쳐 주고 있다.

자연 그대로 모양을 살려 세운 가운데 굵은 기둥이 퍽 인상적이다.

 

보통 사찰 대웅전 마당에 들어서기 까지는 일주문, 금강문, 사천왕문, 해탈문을 차례대로 통과한단다.

고운사 가람배치도를 보면 이 문이 일주문으로 안내되어 있다. 그런데 2km 전 주차장 옆에 일주문이 하나 서 있다.  

그러면 아래의 일주문을 먼저 세웠는데, 숲 초입에 일주문을 다시 세우는 바람에(2년전)

일주문이 2개로 이주문이 되어 버린 꼴인 것 같다. 순서대로 본다면 이 문은 금강문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금강문은 인왕상이라 불리는 2명의 금강역사가 문을 지키고 있어서 인왕문이라고도 한다.

그래서 금강문의 구조도 천왕문처럼 정면이 3칸 측면 1칸으로 이루어진 맞배지붕으로 짓는다.

가운데 칸이 통로이고 양쪽으로 금강역사가 1명씩 문을 지키고 서 있게 된다.

 

그런데 이 문은 지붕과 기둥으로만 이루어진 일주문 형식이다. 왜 고운사에는 일주문을 2개 세웠을까?

 

 

이건 봉정사 일주문이다. 고운사 일주문은 팔작지붕이지만 봉정사 일주문은 맞배지붕이다.

그래서 고운사 일주문이 더 아름답다.

 

 

이건 2km 떨어진 고운사 진입로 입구에 세워진 문이다.

내 기억으로는 2008년에 공사를 하는 걸 보았다. 위의 문이 일주문이면 이 문은 무슨 문이 될까?

 

 

일주문을 지나면 천왕문이 나타난다. 천왕문 안에 4대 천왕상이 있다.

천왕문은 맞배지붕 형식으로 정면이 3칸으로 이루어져 있다.

가운데 칸은 빈 공간으로 두어서 사람이 드나들고 있으며 양쪽 칸에 2명씩 천왕이 서 있다.

 

 

 

 

절 입구에 있는 일주문은 속세와 구분하는 과정 공간이고,

그 다음에 있는 금강문과 천왕문은 부처의 세계를 지키는 정화 공간이다.

4개의 문 중에서 마지막에 있는 문이 해탈문이다. 해탈문을 지나면 비로소 부처의 세계이다.

 

세번째 문인 천왕문에는 이렇게 거대한 4명의 천왕이 부릅 뜬 눈으로 지나다니는 이들을 내려다 보고 있다.

죄를 짓거나 무엄하게 예의를 지키지 않는 사람들은 가만 두지 않을 기세다.  

어린 아기들은 이 험상궂은 표정의 사천왕상을 보고 무서워서 기겁을 하여 울음을 터뜨리기도 한다.

 

4대 천왕은 사방(四方;동서남북)에서 불법(佛法)을 지키는수호신으로 지국천왕(持國天王;동쪽), 증장천왕(增長天王;남쪽), 광목천왕(廣目天王;서쪽), 다문천왕(多聞天王;북쪽)을 말한다. 수미단상(須彌壇上)에서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차례차례 동서남북에 배치하였으며, 가진 물건으로 구별하였다. 중국로부터 전래되는 과정에서 무장한 모습으로 표현하는 것이 일반화되었다. (열린백과)

   

 

 

 

천왕문을 지나자 왼쪽에 아주 자그마한 전각이 보인다. 고불전이다. 

丁자 모양의 구조로 된 이 전각은 장난감처럼 아기자기하다.

 

 

고불전 안에는 석조불이 모셔져 있다. 연등에 매달린 꼬리표가 눈에 거슬린다.

 

 

  

부용반개형상(연꽃이 반쯤 핀 형국)의 천하명당에 위치한 이 사찰은 원래 高雲寺였다.

최치원이 여지ㆍ여사 양대사와 함께 가운루(경북 유형문화재 제151호)와 우화루를 건축한 이후

그의 호인 孤雲을 빌어서 孤雲寺로 바뀌게 되었단다.

 

본당 극락전으로 가기 전에 계곡 물도랑 위에 지은 가운루를 만난다.

가운루는 가늘고 긴 3쌍의 기둥이 계곡으로부터 누각을 받치고 있다. 

 

가람에는 마지막 문인 해탈문 대신에 누각을 배치하여

누하진입하거나 우각진입하게 하여 금당 앞 마당으로 들어서게 한단다.

 

봉정사에는 만세루가 있어서 누하진입 하여 금당 앞 마당으로 들어 서게 되어 있는데,

고운사에서는 가운루가 그 해탈문의 역할을 하는 것 같다.

해탈(解脫)은 불교용어로 심신의 고뇌와 속박으로부터의 벗어나 자유로운 상태가 되는 것을 뜻한다고 한다.

 

그런데 봉정사에는 일주문을 지나서 바로 해탈문 격인 만세루를 통과하여 부처의 세계에 들게 되었는데,

고운사는 일주문이 2개 를 지나고, 천왕문에서 4대 천왕에게 머리 조아린 후에, 해탈문 격인 가운루를 통과하게 되어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16교구 본사인 고운사와 그 말사인 봉정사의 격조 차이인가?

 

 

 

가운루는 우선 개울 위에 세워져, 남과 북의 양 쪽을 이어주는 다리이면서도 건물이다.

길이가 16.2m에 최고 높이가 13m에 달하는 대규모 누각이다. 

3쌍의 가늘고 긴 기둥이 계곡 아래 바위까지 내려가 이 거대한 몸체를 떠 받히고 있다.

마치 양쪽의 언덕에 걸쳐져서 다리와 같고, 계곡 위에 떠 있는 구름배 같다.

 

얼핏 보면 가운루는 가람의 규모에 비해 지나치게 크다는 느낌이 든다.

일주문과 천왕문을 통하여 본당으로 들어오기 위하여 거쳐야 하는 가운루는 해탈문의 역할을 했을 터,

지금은 가운루 아래 돌다리가 놓여 있지만 그 이전에는 가운루가 다리 역할을 했을 것이다.

 

가운루는 “누각에 서면 아래로는 계류가 흐르고, 뒤로는 찬란한 산들과 구름의 바다를 접하는 신선의 세계”라고

극찬한 옛 기록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가운루 바로 뒤에 범종각과 대웅보전을 비롯한

여러 채의 불사가 중창되면서 계곡을 거의 덮어 버려서 옛 절경이 많이 사라져 버렸다.  (뒤쪽에서 본 가운루 모습)

 

 

 

우화루 서편 벽에는 호랑이 그림이 그려져 있다. 수리를 하면서 원 그림은 따로 보관 전시를 하고 있는데

그 앞을 지날 때 부릅 뜬 호랑이 눈동자가 사람을 따라 움직이는 것 처럼 보인다고 알려져 있어서

일부러 그 앞을 왔다 갔다 하면서 확인하는 사람도 있다. 그 사람 중에 내가 빠질 수는 없겠제? ㅎㅎ.

가운루와 우화루 사이 계곡이 이렇게 허무하게 메꾸어져 버렸다.

 

 

 

극락전은 아미타부처님과 관세음, 대세지 두 보살을 모시고 있는 법당이다.

현재의 대웅보전이 신축되기 전까지 고운사의 큰법당 역할을 하던 오랜 건물로 소박하면서 절제된 느낌이 있다.

 

 

 

색 바랜 오랜 단청이 너무도 이쁜 집 연수전(延壽殿, 경북문화재자료 제 444호)이다.

연수전은 왕실의 계보를 적은 어첩(御牒)을 봉안하기 위해 조선 영조(1744년) 때 건립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가?  목숨을 연장한다는 뜻을 담은 건물 이름을 가지고 있고, 

단청의 그림이 절집과 관련된 그림이 아닌 봉황과 태극 문양이 임금과 연관이 있음을 말해 주는 것 같다. 

 

 

 

연수전에 들어가려면 이 만세문을 통과해야 한다. 그 집에 어울리는 참 새찹은 문이다.

3칸 규모의 대문인 만세문(萬歲門) 또한 산의 생김새를 닮아 예쁘고 독특한 맛이 있다.

지붕이 산의 형상을 하고 있는 만세문 3칸에도 태극 문양이 그려져 있다.

 

십 수년 전 이 대문을 화폭에 담으러 몇이서 스케치 나왔던 기억이 새롭다.

바쁘다는 핑계로 붓을 놓은지 오래 되어 유화 물감 튜브는 굳어서 두껑도 열리지 않는다.

 

 

 

해마다 건물이 중수되더니 예전보다 전각이 많이 늘었다.

이 대웅보전도 신축한 건물이다. 지금은 큰법당 역할을 하고 있단다.

고운사는 최근 불사로 사찰의 규모가 많이 커지고 짜임새 있게 자리 잡혀 가고 있다.

 

사세가 번창했을 당시에는 366간의 건물에 200여 대중이 상주할 정도로 큰 도량이, 해방 이후 쇄락해서 

지금은 이십 여명 대중이 상주하는 교구 본사로는 작은 규모의 사찰로 전락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10여 년 전부터 중창불사로 주변을 정리하고 낡은 건물들을 수리하면서 지금은 본산의 위상을 찾아 가고 있단다.

민가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서 번잡하지 않고 조용한 사찰의 분위기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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