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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나누기/사는 이야기

신신이발관 2

by 여왕벌. 2010. 2. 14.

2010. 2. 13.

 

까치설 아침에 눈이 소복하게 내렸습니다.

날씨가 푹~하니 눅어서 큰 길에는 벌써 따신 햇살에 눈이 다 녹았는데도

엄니는 설 쇠러 서울 아들네 집에 못갈 것 같다시며 한 걱정을 하십니다.

 

출발 시간에 여유가 있어서 카메라를 들고 동네를 한 바퀴 돌았습니다.

신신이발관이 그저께 보다 조금 더 넉넉하게 눈을 덮어 쓰고 있네요.

게으름을 피우느라 느지막히 나왔더니만 벌써 지붕의 눈이 녹고 있습니다.

 

 

밖에서 창문 안을 기웃거리는데 인상 좋으신 이발사 아저씨가 이발하러 온 줄 알고 들어오라십니다.

그냥 구경 좀하려고 한다니 좀 의아해 하면서 카메라를 든 모습에 경계를 하는데 

 

"내앞 어른 큰 따님이시네요. 학교 나가시는."  아주머니가 내다보고 반겨주십니다.

몸은 좀 불편하지만 아직도 준수한 모습인 아저씨는 그제사 알아보시고 어쩐 일이냐며 반갑게 웃어 주십니다.

 

"아이고~! 동짜 철짜 어른 딸이네. 법 없이도 사는 어른이셨는데 참 아깝게 돌아가셨지."

 

마침 이웃 동네 어르신 한 분이 이발을 하시면서 아는 척 반겨주십니다. 아버지~! 청년처럼 건강하시던 아버지

기발한 아이디어로 남다르게 농사를 지어 동네 어르신들의 선각자 역할을 하시던 아버지도 이 이발소 단골이셨습니다. 

 

이발소 안은 옛 모습이 그대로 많이 남아 있습니다. 의자며 이발소에서 사용하는 기구가 옛날에 보던 것들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구석 구석 정리되지 않은 모습은 창피스러우니까 담지 말라고 하시면서도 예전에 머리 감을 때 쓰던 물뿌리개도 사용해 주십니다.

 

 

 

이 물뿌리개 참 오랜만에 봅니다.

몇 군데 터진 곳을 철사로 묶어 매어서 쓰고 있는 모습이 더 정겹습니다.

읍내에 7군데 이발소가 있다고 하는데 옛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곳이 신신이발관 뿐이라고 합니다. 

 

 

 

거울 앞에는 이발 가위와 머리빗, 면도칼이 그릇에 담겨 있는데

요즈음 보기 어려운 면도용 거품 그릇이 보입니다. 사각형 프라스틱 그릇에 둥근 손잡이 솔이 보이네요.  

비누 거품이 아직 부글거리는 걸 보니 방금 이 솔로 거품을 발라서 면도를 하셨나 봅니다.

 

날이 닳은 면도 칼 손잡이도 검은 비닐로 동여 매어 두었네요.

이것 저것 둘러보면서 추억에 젖어 카메라에 담는데 몇 해 전에는 영화사에서 몇 장면 영화 촬영도 했다고 자랑합니다.  

 

 

 

분첩 같은 그릇이 보이길래 무엇에 쓰냐고 물어 보니 머릿결을 고르는 데 사용한다고 합니다.

바렌 처럼 생긴 솜으로 분가루를 머릿결에 바르면 층이지는 걸 쉽게 알 수가 있다고 하네요.

구두솔 처럼 생긴 솔은 뭐에 쓰는 지는 모르겠습다요. 아마 목덜미의 머리카락 가루를 터는 데 쓰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헤어 드라이기입니다. 반짝거리는 모습을 보니 이건 신신이발관에서는 가장 최신형 이발 기구 같습니다.

드라이기를 얹어 놓기 편하게 짜여진 나무 상자도 오랜 연륜이 보입니다.

 

 

 

머리 감는 세면대입니다. 나무판자로 만든 목가리개가 인상적입니다. 윗저고리에 물이 튀는 걸 막기 위해서 만들었네요.

판자가 닳은 모습과 경첩이 녹 슨 걸 보면 세월을 짐작할 수 있겠습니다.

이발소 문 열 때부터 쓰던 거라 하니 얼마나 알뜰한 주인인지 감탄스럽습니다.

 

 

 

머리 감을 때 앉는 동그란 나무 의자입니다.

이런 의자는 오래 전 학교 과학실에서 많이 보던 것입니다. 나무 의자 역시 페인트 칠이 다 벗겨져 있습니다.

 

 

 

빨간 이발소 의자도 빼 놓을 수 없겠지요?

바닥의 비닐 가죽이 찢어져서 스펀지가 다 드러나 보이는데 여직도 의자로서 소임을 다하고 있습니다.

 

어떤 분이 이발소가 만약 문을 닫게 되거나 수리를 하기 위해서 물건을 바꿀 때 꼭 연락을 달라고 부탁을 하더랍니다.

아마 생활 박물관 같은 곳에 전시하기 위하여 옛 물건을 살피러 다니는 사람이 아닐까 싶네요. 아니면 골동품 수집상이거나.

여기 있는 물건이라면 충분히 그만한 가치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의자 목을 위로 올릴 수 있는 장치도 있네여.

의자 옆의 길다란 손잡이는 의자를 뒤로 눕힐 수 있는 장치랍니다.

 

 

 

발판에 OLYMPIA 표식이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발판은 앞뒤로 움직이게 되어 있네여.

이 발판 위에 발 올려 놓고 발장난을 하던 기억이 납니다.

 

 

 

 이건 요즈음에도 사용하는 의자라는데 이 것도 연식이 꽤 오래 되어 보입니다.

 

 

 

이발관 한쪽에는 추위를 녹이기 위해서 연탄 난로가 들여 놓여 있습니다. 연탄 2 장이 들어 갈 정도 크기네여.

구석에 찻잔이 있는 걸 보니 주전자에 데워진 물로 커피 한잔도 대접하나 봅니다.

아직 물이 끓지 않아서 아쉽게도 커피는 얻어 마시지 못하였습니다.

 

 

문 밖에 있던 연탄은 바로 이 난로에 넣으려고 대기 중이던 녀석이었습니다.

 

 

 

칠이 벗겨진 작은 장이 보입니다. 별 용도가 있어 보이지는 않고 그저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발관 출입 문 위에 복조리가 걸려 있습니다.

어릴 적 설날 아침 대문간에는 복조리가 몇 개씩 던져져 있었습니다.

 

동네 청년들이 너도 나도 던져 놓고 며칠 후에 조리값을 받으러 오는데, 

복조리는 고학생이나 이웃 오빠들의 짭짤한 수입이 되곤 했지요.

 

복을 가득 담아 주는 복조리는 정지 문 벽 위에 걸어두고 일년의 복을 이 조리로 다 건져 올린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이젠 그 "복 받으세요~!" 외치는 소리는 추억의 소리로만 기억되고 있는데,

신신이발관 벽에 요렇게 이쁜 복조리가 걸려 있지 뭡니까요.

 

 

이발관 문을 나서는데 또 한 어르신이 머리를 다듬으러 들어오십니다.

이렇게 단정하게 머리를 다듬고 몸 매무새를  정결하게 하여 설을 쇠려는 모습을 보니 마음 따뜻해집니다.

머잖아 우리 아래 세대는 어떻게 설을 지내게 될까?

 

어설픈 이발관 모습을 담게 허락해 주신 이발사 아저씨가 무척 고맙습니다.

고향에서 이런 정겨운 모습을 아직 볼 수 있음도, 유년의 시절을 추억하게 해 주어서 참 고마운 일이고요.

 

비록 복조리를 받은 건 아니지만 복조리를 받은거나 진배 없으니

올해 내겐 어떤 복이 복조리에 가득하게 담겨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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