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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나누기/탐사 일기

2800원 짜리 겨우살이

by 여왕벌. 2009. 12. 6.

2009. 12. 5.

 

에혀~! 글렀다. 오늘 겨우살이 보러 갈라고 하는디

아침부터 비가 부슬거리지 않갔슴?

 

 

지난 주에 이눔 볼라꼬 밧줄이랑, 아이젠까정 준비해 가믄서리

오만 궁상을 다 떨었지 않았슴메? 해서 나무에 오르는 건 포기혀야 겠고

뭐 도산 할배 큰 기침하던 데 가믄 쉽게 볼 수 있다길래 토요일만 기둘리고 있었잖소.

 

내 정성 그만 하믄 토요일 기다리는 내 사정 쪼매는 봐 줄만 할 거인디.

 

 

이 눔의 날씨는 11시 가까이 되어서는 바람까지 불어대더니만 급기야 눈발까정 뿌려대잖소잉.

 

무슨 놈의 날씨가 주말만 되믄 비가 오고 눈이 온다냐? 궁시렁 궁시렁

 

그래도 비가 아니라 눈이 오는 게 을매나 다행인감.

뭐 이 정도 날씨쯤이야 내 간절한 맴을 말릴 수는 없제이여. 암만.

 

 

퇴근 시간 5분 전.

주섬주섬 짐을 챙겨 팽하니 달리는디 바람 소리가 범상치는 않단 말시

이 눔의 동장군, 12월이 다 되도록 팬장팬장 게그름 피워쌌더니

인자 지가 지 할 일 하겠다는디 뭐라 나무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눔 동장군이 오늘은 우야든동 적당히 임무 수행하길 바랠 뿐이고.

나는 겨우살이 보고싶을 뿐이고.

 

 

암튼, 드뎌 1000원 짜리 할배가 아그덜 공부 갈키던 집 근처에 도착혔잖소.

 

 

"2000원 주소"

 

무시기? 여그서 주차료 준 적이 없는디여?

내 볼멘 소리에 할매가 한 쪽을 가리키는디,

공용유료주차장이란 표지판이 있으니 뭐 깨갱하고 꼬리 내릴 수 밖에여. 할 말이 없지라.

 

 

언제부텀 주차료 받았냐니까 2004년부터 라네여.

그라몬 내가 2004년 이후 여그 한번도 안 왔다는 거인디 안동시민인 내도 참 어지간 하구먼유...

 

 

"대신에 안동 사람은 입장료 쪼매 받니더"

 

 

아~! 입장료. 그나마 안동에 거주하는 사람은 800원이란디여. 나! 안동 시민이여!

안내 리플렛을 받아 쥐고 서원쪽으로 향하여 두리번 거리는디 

강을 바라보고 서 있는 굴참나무 위의 겨우살이 노란 열매가 맨눈으로도 보이는기라.

하이고야~! 반갑다. 아그야!  내 니 엄청 보고 싶었다 아이가.

 

 

ㅎㅎㅎ...역시나 여기 쯤일 것 같더니...

 

헌데여, 길 옆에 조경된 향나무 울타리에 의지하여 가지끈 당겼는데도

이 녀석 똑딱이 카메라를 우습게 보믄서 코웃음 치는디, 내가 우얄 도리가 있간디 .

팔을 쭈욱~~ 뻗쳐서 담긴 했는데.....요로코롬 밖에 안 나왔응게 성에 차갔슴둥?

 

  

 

 

 

"뭘 찍는데요?"

 

이리 저리 정신 없이 담고 있는디 궁금쟁이 젊은 청녕이 말 걸어오니, 대답하랴 조준하랴 엥~! .

겨우살이라 했더니 그거 비싸게 팔린네여. 참, 나원!

 

"이 녀석도 자연의 일부인데 함부로 채취하면 안되겠지요. 살아갈 기회는 줘야 하겠져?"

그 젊은이들이야 들은 이야기였겠지만 한 마디 하지 않을 수가 없제이요.

 

 

까치발 까정 해가믄서 낑낑거리고 담는데 갑자기 거세어지는 바람에 몸이 흔들흔들.

아고야! 지발 좀 참그라! 내 쪼매만 더 담으믄 된다이.

20분이 넘도록 굴참나무 아래서 손 들고 벌 서고 있었응게

손도 꽁꽁! 발도 꽁공! 입도 꽁꽁!

 

 

 

 

곱은 손 호호 불믄서 일단 작전상 후퇴해서리 서원 쪽에 가까운 나무를 정찰하는디.

오메라~! 참나무마다 겨우살이가 주렁주렁 하지 않으요.

 

 

요거이 크롭한 것이지라.

 

 

핫! 그렇지.

갑자기 떠오르는 생각에 나무 가까이 다가갔는디.

 

지가 워쨋으까이? 나무에 올라갔으까여?

천만에 말씀 만만에 콩떡이라.

밧줄도 없고 아이젠도 없는디 워뜨케 나무를 탄단 말시?

 

 

바람이 무지 세게 불고 있었다는 거. 그라도 짐작이 안간다요?

 

나무 아래 낙엽 위를 눈을 반짝거리믄서 살피지 않았슴둥? 인자 짐작이 갔음메?

그렇지라. 바닥에 떨어진 겨우살이 가지를 그예 주워들었잖슴.

절~~때로 지가 딴 게 아니랑게여.

 

 

워뗘유? 투명한 속살이 비치는 노란 열매가 이쁘지 않으요? ㅎㅎㅎ 

 

 

  

 

 

 

 

알맹이 하나 주워서 터뜨려 봤습져. 이렇게 끈적한 점액질 속에 녹색의 씨앗이 하나 들어 있더만여.

참 겨우살이는 저 혼자 광합성작용을 하는 반기생식물로 숙주나무에 별로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구먼유. 글고 암수딴그루라는 디여.

 

 

 

 

 

 

오늘 2800원짜리 겨우살이 본다꼬 요렇코롬 빨갛게 손이 다 얼었슴메.

우쨌든지 시꺼멓게 담은 겨우살이라도 노란 열매 지대루 눈맞춤 혔응게여,

인자 소원 풀었지라.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