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2. 5. 제주 첫째 날
일단 일을 저지르는 게 상책이었다.
겨울 방학이 시작되면서, 아니 가을 내도록 제주도 가야지 하면서 벼르던 게 겨울이 되어 버렸다.
아무래도 이러다가 이번 방학도 그냥 벼르기만 하고 죽 떠 먹은 자리가 되겠다 싶어서
비행기표부터 예약 했다. 2월 초순이면 세복수초와 제주수선화 정도는 볼 수 있을 거라는 정보도 있었고.
아무 생각 없이 욕심 없이 사흘을 편안한 마음으로 쉬고 싶기도 했다.
출발하기 이틀 전에 숙소와 차량 대여를 예약하고 5일 아침 9시 제주 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 창문으로 제주 해안의 집들이 가까이 다가온다. 이제 그리던 제주인가 보다.
공항에서 렌트한 차를 받아서 곧장 산방산 쪽으로 차를 몰았다.
익숙하지 않는 차종에 처음에는 어색하였으나 이내 적응이 된다.
산업도로로 가는 도중에 LPG 주유소를 지나쳐 버려서 다시 되돌아 와서 연료를 주유하였다.
연료가 부족하여 산록 어디에서 퍼지기라도 한다면 참으로 낭패가 아니겠는가.
제주수선화를 보려면 서귀포 해안을 돌아다녀야 한다.
산방산으로 향하던 도중 해안 도로에 차를 세우고 공단풀 열매를 담는데
저 멀리 도로 아래 비탈에 짙은 녹색과 희끗한 점들이 보인다.
유채로 보기에는 무언가 미심쩍고 분명 제주수선화 같기에
차를 둔 채로 100m 남짓 길을 걸어서 다가가니 활짝 만개한 제주수선화다.
매혹적인 향기에 핑~! 현깃증이 난다. 바다를 배경으로 제주수선화는 이렇게 봄을 부르고 있다.
그리운 제주수선화~! 너를 보려고 새벽같이 비행기를 타지 않았잖슴?
도로 철책을 넘어서 비탈에 몸을 의지하여 조심 조심 담는데 많이도 피어 있다.
용머리 해안으로 가는 진입로와 공원 주변에 조식을 해 놓은 녀석들도 찾아오는 나그네들을 반기고 있다.
인공적으로 심은 게 그리 달갑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쁜 것은 이쁘다고 인정해 줘야지.
산방산 아래 밭에는 유채가 한창 꽃을 피우고 있고
왕갯쑥부쟁이도 미련이 많아서 봄이 오는 줄도 모르고 가을 꽃을 피우고 있다.
제주는 보이는 것 모두가 내륙과 달라서 이국적이다. 생소하고도 신비스런 풍광을 담느라고 카메라를 내려 놓을 틈이 없다.
섬갯쑥부쟁에에 맞추다 보니 산방산이 쏟아져 내리려고 한다. ㅎ
잔디밭에는 벌노랭이가 지난 가을 꼬투리를 단 채로
통통하게 살오른 노란 궁뎅이를 살랑거리면서 눈웃음 치고 있다.
알곡과 열매가 난 자리에는 애기달맞이 신초가 자리를 틀고 있고
한 쪽에서는 성급한 녀석이 벌써 꽃을 피우고 열매도 달고 있다.
용머리해안 공원에 잎이 혁질이고 약간의 결각이 있는 듯한 나무가 보인다.
구골나무가 아닐까 하고 살피는데, 아고야~! 잎 겨드랑이에 하얗게 꽃이 피어 있다.
안 그래도 대구수목원에서 나무 잎과 수피만 담아서 꽃을 봐야 할텐데...했더니만.
이건 생각지도 않던 수확이다. ㅎㅎ..
현무암으로 담을 친 밭둑에는 어김없이 송악과 계요등 덩굴이 자리를 잡고 있다.
실쭉하니 배가 고프길래 시간을 보니 1시가 넘었다.
주변의 식당에서 한끼 해결할까 하다가 관광객들 사이에 혼자 식사하기가 뭣하다.
일단 강정으로 출발한다. 작년에 예래동에도 빈터나 노지에 제주수선화가 있던 걸
보았기에 들러 보려했으나 공사 중이라 접근이 안된다.
풍림리조트 근처 악근천 주변에 차를 세우고 주변 밭이나 냇가를 살피니
자주풀솜나물과 광대나물 큰개불알풀이 머리를 맞대고 따신 볕에 눈부셔하고 있다.
악근천은 용출수가 해안 가까이서 지표로 나와 흐르는 1급수천이라고 한다.
강정포구 근처에서 바다로 흘러드는 용수물에는 물냉이가 밭을 이루고 있더니
이곳에도 물냉이가 하얗게 뿌리를 드내며 흐르는 물에 발 씻고 있다.
분주한 소리에 고개 돌리니 올레꾼들이 지나간다.
외돌개서 부터 출발하여 강정포구 중문해수욕장으로 이어지는 코스가 7 코스로
주상절리와 빼어난 해안의 풍경에 다들 감탄이 끊이지 않는다는 곳이다.
일탈의 시간으로 제주의 자연을 탐하는 올레꾼에게 박수를 보낸다.
올레꾼들과 반대 방향으로 악근천에서 썩은섬까지 걸어본다.
해안은 구멍난 검은 현무암이 자연의 정원을 연출하고,
현무암이 부서진 모래도 검은색으로 올레꾼의 발바닥을을 간지르고 있다.
멀리 범섬과 가까이 썩은섬(서근도)이 보인다.
현무암 돌담 위 우묵사스레피나무는 까만 열매가 다글거리는데
묵은 열매 위쪽에는 아직 말라붙은 꽃을 단 어린 열매가 막 살찌우기를 시작하고 있다.
자연의 순환을 한 자리에서 본다. 사라져 가는 사람들과 새롭게 부각되는 사람들,우리 삶도 이렇겠지.
돌담을 따라 까마귀쪽나무도 파란 열매를 달고 있다. 다 익으면 까마귀처럼 까맣게 익는다
소나무 등걸에는 후추등이 줄타기를 하며 기어오르고 팔손이 나무도 자잘한 열매를 익히고 있다.
도롯가에 노란 멀구슬나무가 구슬처럼 조롱거린다.
올레길을 통하여 풍림리조트 숲 안으로 들어서니 정수기와 발을 씻을 수 있는 수돗물이 보인다.
목마르고 지친 올레꾼들을 위하여 작은 시설을 마련해 준 풍림리조트의 배려가 고맙다.
결국 식사하기에 적당한 곳을 찾지 못하여 점심을 볶은 콩과 물 한 모금으로 떼웠다.
제주시로 넘어오는 도중 5시 가까운 시각에 전복탕 한 그릇으로 점심 겸 저녁을 해결하였다.
공항 옆 숙소에 돌아오니 넓고 깨끗한 시설에 피로가 싹 가신다.
예약 후 알아보니 좀 비싸다 싶었는데 시설이 그만하니 뭐 그걸로 손해 본 듯한 기분 씻어버린다.
제주수선화 향이 아직도 전해 오는 듯 해안을 바라보는 제주수선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일 저지르길 참말로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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