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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나누기/탐사 일기

두 시간의 가을 산책(산국/머루/민청가시덩굴/용담/두충나무/떡쑥/긴오이풀

by 여왕벌. 2009. 11. 6.

2009. 11. 6.  학교뒷산.

 

출근 길에 늘 올려다 보는 뒷산 정수리에 옥산사가 앉아 있다. 한 번은 가 봐야제 하고 벼르던 게 오늘이 되었다.

점심을 일찍 해결하고 걷기 편한 차림으로 갖춘 후 대문을 나선다. 운동장에는 양버즘나무 낙엽이 가득 깔려 있다.

너무 넓은 운동장이라 쓸어도 끝이 없을 뿐더러 낙엽이 뒹구는 모습이 오하려 자연스럽고 운치가 있기도 하고

기다리면 바람이 쓸어 줄테니 구태여 쓸 필요도 없이 일주일에 한 번 쯤 정리하라고 일렀다.

 

마을을 지나는데 가을하느라 그런가? 집집마다 인기척이 없다.

산으로 오르기 전 어느 집 마당 가에 광대나물이 가느다랗게 목을 빼고 기우는 가을 햇살에 눈부셔 하고 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들깨가 폭삭 삶아졌다. 올해 들깻잎 김치는 맛보기 어렵겠다.

주인 떠난 빈 집 삽작머리에 산국만 노랗게 길손을 맞아준다. 

 

산초입 찔레덩굴에 까만 열매가 보이길래 댕댕이덩굴인가 하여 가까이 가보니 오잉? 머루 열매다. 

맨날 개머루만 흔하더니 주저리도 충실한 진짜 머루가 찔레 덩굴 속에서 주렁 주렁 열려 있다.

허 참! 왕머루인지 머루인지 모르겠다만 봄에 꽃을 담을 기회를 놓쳐 버렸네.

 

이눔 열매를 담으려고 까시 덩굴 속으로 카메라를 디미는데 욘석 찔레가 저항이 만만치가 않다.

가시에 손가락을 찔려 가면서 담고 나니 가시에 셔츠가 걸려서 올이 군데 군데 빠져 있다. 우쒸~!.

암튼 내년에는 이 녀석 꽃 필 시기를 놓치지 말아야지.

 

   

다랑이논이 끝나니 과수원이 나타난다.

이미 사과 추수는 끝이 나고 색을 곱게 내기 위하여 과수원 바닥에 재여 둔 사과가 풍성하다.

올해 과일이 풍년이어서 사과 값이 많이 떨어졌다는데...농사를 잘 짓고도 걱정이겠다.

  

빈 나무에는 달랑 까치밥 하나. 잘 익은 녀석을 까치밥으로 남겨 준 농심이 정겹다.

 

근데 고 까치밥이 왜 그리 맛있어 보일까? 따고 싶은 마음을 돌려 민청가시덩굴로 시선을 옮긴다.

 

철 늦은 용담도 마지막 가을이 아쉽기만 한지 서리가 내려도 파랗게 꽃 피우고 있다.

 

산사 아래 커다란 두충나무가 납작한 열매를 달고 있다.

한 때 두충나무가 소득을 올려 줄거라면서 집집마다 빈 터만 있으면 많이들 심었다.

울 아부지도 밭둑에 몇 그루 심으셨지만 아부지 가신 후 밭을 붙이는 동네 사람이 베어 팔았다는 이야기만 들었다.

 나무 껍질을 한약재나 차 재료로 팔리기도 했지만 지금은 천덕꾸러기가 되어 곳곳에 자리만 차지하고 있다.

   

 

느적느적 주변을 살피면서 이것 저것 카메라를 들이대느라 출발한지 1시간 여 만에 옥산사 턱 밑에 다다른다.

두충나무 열매를 담는데 개 짖는 소리가 요란하다. 요사채에는 주지승의 아들 젊은 처사 혼자서 두 마리 개를 데리고

 적적한 산사의 방문객을 반겨준다. 약사여래좌상이 새겨진 바위 앞에 자그마한 산사가 주인을 잃고 우울하게 침묵하고 있다.

 이 곳이 고향인 기사님의 이야기를 나중에 들으니 주지승이 세상 뜬지 몇 달이 되지 않았단다.

 

시간이 넘 지채되어서 급하게 내려오는데 젊은 처사가 부른다. 커피 한잔 하고 가란다. 아마 사람이 그리웠던 모양이다.

나중에 올 때 한잔 마시겠다며 발걸음 재게 돌린다. 산사 아래 떡쑥 월동초가 분백색 밀모를 덮어 쓰고 겨울 채비를 하고 있다.

 

 엇~! 올라 올 때 보지 못했는데? 이기 무슨 일이간디?

 3~5장의 소엽, 길쭉한 소엽이 분명 기냥 오이풀은 아닌 것 같다. 화서가 길쭉한 걸로 봐서 긴오이풀이 분명하다.

어떻게 긴오이풀이 여기 있을까? 야생화 카페에 보면 강원도 쪽 높은 산 습지 부근에서 담은 사진이 올라오던데...

이 녀석 만나러 강원도를 헤맬 수도 없고 안달만 했었는데 정말이라면 이건 굉장한 수확이다. 도감을 확인하니 긴오이풀이 맞다.

야호다. 야호! 우하하~~~! 내년에는 기필코 담으리라.

 

 

급하게 내려오는 길, 동네를 지나는데, 어느 집 마당 가에 맨드라미가

도회로 떠난 아들 소식 기다리는 할머니의 타는 가슴으로 대문 앞을 붉게 지키고 있다.

사진을 찍는 내게 마음에 들면 꺾어 가라시는 할머니는 불편하신 다리로 서서 인심 좋은 웃음 웃으신다.

 

담 너머 높이 가을 하늘을 이고 감홍시가 빨갛게 매달려 있다.

두 시간 남짓한 가을 산책에 무거워 있던 마음 내려 놓는다. 가을은 결실의 계절인데 나는 무엇을 여물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