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1. 8.
일요일 휴일에 딱 맞춰 가을비가 추절추절 내린다. 둥근바위솔 담으려고
동해안에 나가려고 벼르고 있었는데 이눔의 심술 고약한 하늘이 밉살스럽기 짝이 없다.
오전 내도록 이곳 저곳 카페에 들락거리다가 카메라를 들고 마당으로 나간다. 대문 앞 감나무에 알감이 몇개 대롱대롱 거린다.
엄니가 베어버리자고 성화인 이 감나무는 사실 그런 말 들어도 쌀 만큼 쓸데 없이 풋감을 떨어뜨려서
대문 바닥을 질척거리게 하고 엄니가 귀찮아 하실만큼 아침마다 감나무 잎을 떨어뜨려 놓는다.
그래도 맹돌이가 감나무 그늘 덕분에 헐떡거리지 않아도 좋고,
감나무 덕분에 둑 위로 지나는 사람들이 집을 훤하게 들여다 보지 못하니 좋지 않느냐고
엄니의 나무 자르자는 이야기만 나오면 이런 이유로 입막음을 하였다.
가을 벼베기가 끝난 논이 을씨년스러워 보인다.
가을 걷이가 끝난 논바닥은 갑자기 내린 쓸데 없는 비로 물이 고여 있다. 앞산의 상수리나무에도 가을색이 누렇게 앉았다.
집 뒤의 논에 물달개비와 봇풀이 산다. 여름이면 한 번쯤 이 녀석들을 담으러 오후 시간을 보낸다.
이제 물달개비도 봇풀도 내년을 기다리면서 겨울잠으로 들어갈 채비를 하고 있겠지.
마당에 있는 나무는 엄니가 동네 이웃에서 얻어오신 옥매, 내 초임 시절 학교에서 얻어온 박태기나무 2세,
약초밭에서 재배하고 남은 목단, 엄니 시집올 때 이미 자라고 있었다는 배나무, 귀신 쫓는다고 심은 음나무,
꽃만 피우고 열매도 달지 않는 모과나무, 해마다 가지가 잘리는 감나무, 앞산에서 옆 가지 돋아난 거 한 뿌리 가져온
화살나무와 가침박달이 지 멋대로 자리 잡고 앉아서 철철이 때를 놓치지 않고 꽃을 피우고 있다.
봄날의 고운 꽃 시절이 그리운가? 옥매 나무는 잎을 다 떨어뜨리고 빗방울을 그네 태우며 혼자 놀기에 여념이 없다.
언제였던가? 쥐방울 덩굴 씨앗을 주머니에 넣고 와서 옥매 옆에 뿌려 두었는데
올해가 되어서야 꽃을 피우더니 열매를 매달았다. 아직 낙하산 펼치지도 못하였는데 비에 젖어 버렸다.
마당 한켠 담 옆으로 화단을 만들만한 땅이 있다. 이 곳에 여기 저기서 얻어 온 야생화나 나갈 때 마다
주머니에 담아온 씨를 아무데나 뿌려 놓아서 여름이면 지 멋대로 돋아난 풀들로 땅바닥이 안 보일 정도다.
엄니는 울긋불긋 화려한 색깔이 있어야 꽃이지 그게 무신 꽃이냐고, 풀밭을 맹글어서 뱀 돌아 댕긴다고 볼 때마다 핀잔이시다.
하기사 내가 봐도 대책 없이 돋아나는 잡초 수준의 꽃밭이 한심하긴 하다. 사실 화단 아래로 굴을 뚫어서 돌아댕기는 쥐생원이나
담옆으로 가끔씩 배암이 스르르 지나다니니 엄니 걱정이 괜한 것도 아니다.
아부지 살아계실 적 약초 재배상의 꼬임에 혹하셔서 집 앞 밭에 작약, 목단, 당귀, 지모, 황기 등을 재배하셨는데,
별 소득을 올리지도 못하셨다. 그 때 밭 한 켠에 한 고랑 정도 더덕이 자라고 있었는데
그 더덕 뿌리가 아직도 씨앗을 떨구면서 집안 마당 구석 구석에서 자라고 있다.
뿌리를 캐지 않아서 모르겠다만 아마 오래 묵은 건 산삼보다 더 약효가 있지 않을까?
더덕의 마른 줄기에 씨앗이 아직도 매달려서 이 녀석도 비에 젖고 있다. 비 그치면 곧 내년에 싹 틔울 자리를 잡아야 하지 않겠나?
작년에 많이도 열렸던 화살나무 열매가 올해는 거의 안 보인다. 이 녀석도 해걸이를 하는감?
어느 봄 날, 가지가 벋어서 지나다니는데 걸리적 거린다고 엄니가 화살나무가지를 마구 부러뜨려 놓으셨다.
마당에 잡초가 가득하면 동네 사람들 흉본다며 마당에 돋은 개불알풀이며, 민들레, 개미자리가 꽃도 피기도 전에
엄니는 아침 나절동안 부지런하게도 호미로 김을 매어 버리셨다. 잡초야 어쩔 수 없지만 애꿎은 나무를 마구 잘라버리시니,
부러뜨린 화살나무 땜에 엄니랑 싫은 소리로 성질을 좀 부렸었다. 그러고 나서는 엄니 마음 불편하게 해 드린 것 같아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 화살나무도 고운 단풍이 들더니만 그 단풍도 얼마 전 추위에 다 떨어지고 마지막 남은 잎새 몇 장이 비에 젖고 있다.
화살나무 가지에 참마 살눈이 비를 맞으면서 줄타기를 하고 있다.
이 자그마한 살눈은 내년 봄이 되면 또 한 포기의 참마로 새로운 생을 열겠지?
맨날 씰 데 없는 것만 심는다고 핀잔하시는 엄니는
하얀 꽃주저리 흐드러지게 꽃 피워주는 이 가침박달 만큼은 보기 좋다시며 좋아하신다.
마른 가지 끝에 달린 오각형 우주 속에서 가침박달은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일요일 꽃나들이를 나가지 못한 아쉬움을 집 마당에서 이렇게 달래었다.
전정 가위를 들고 화분에 남아 있던 가을의 흔적을 말끔하게 정리하고 나니 밀린 숙제를 해결한 듯 개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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