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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나누기/탐사 일기

반야계곡 개버무리를 찾아서(2009. 9. 4.)

by 여왕벌. 2009. 9. 5.

2009. 9. 4. 반야계곡.

 

개버무리 이 녀석 때문에 오늘 반야계곡을 찾았다.

 

목적지 포인트가 있는 지도를 눈에 익혔던 터라 네비게이션을 작동시키지 않고 가다가

석포에서 잠시 길이 헷갈려서 승부역 쭉으로 갈 뻔 했다.

반야마을은 석포에서 동쪽 계곡이고 승부는 남쪽으로 난 골짜기인데 하마터면 엉뚱한 곳에서 허탕할 뻔 했다.

네비에 반야분교를 입력하니 폐교 된지 오래라(1996) 이 녀석 모르는 모양이다. 할 수 없이 지도를 의지하는 수 밖에.

 

헤매던 길을 돌려 반야 쪽으로 방향을 제대로 잡았다.

봄에 왔던 끈끈이장구채가 있는 곳을 지나고 골짜기 초입으로 접어드니 차 한대 지나다닐 정도로 길이 좁아진다.

 일부 구간 확포장 공사를 하느라 어수선하다.

오토바이를 타고 오는 어르신한테 반야분교를 물으니 고개를 넘어서 조금만 가면 된단다.

공사중인 길 끝머리에 마을이 나타난다. 나래기 마을이다.

학이 날개를 펴고 날아가는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고랭지 밭에는 배추 수확이 끝났고 당근 잎이 너불거리고 있다.

나래기마을을 지나 노루목 고개를 넘으니 아래 쪽으로 깎아지른 듯한 절벽과 절벽 사이로 펼쳐진

반야계곡은 가히 명경지수라. 맑고 깨끗한 자태를 한껏 드러내고 있다. 맑은 옥빛 계곡에 번잡한 마음을 깨끗하게 씻는다.

 

붉은 춘양목 금강송이 위용 있게 서 있는 좁은 길은 차 한대가 지나다닐 정도라 

맞은 편에서 차가 나타날까 봐 내심 조마조마하다. 가을은 여뀌의 계절이다. 냇가에는 여뀌들이 지천이다.

 

절벽 옆에 잠시 차를 세우고 탐색을 하는데,,개버무리는 안보인다. 이 곳이 아닌 모양이다.

그냥 가기 아쉬워서 야광나무 붉은 열매를 담는다.   

  반야 마을 앞 기울 물은 마시고 싶을 정도로 맑고 투명했다.

동네 어르신 한 분이 개울에서 고기 잡는 기구를 확인하고 있었다.  뭔가 잡힌 모양이다. 꺽지일까?

  

길 옆에 보라색 황금 꽃이 보이길래 잠시 차를 세웠는데, 밭 주인은 기척도 없고  농촌 마을은 조용하기만 하다

두어 컷 담았나? 카메라에서 잠시 눈을 떼고 땅바닥에 아예 푹 무질러 앉는데

어라? 눈에 익은 녀석이다. 자잘한 푸른 꽃. 개차즈기다.

이 녀석 담을려고 이태 전에 보았던 곳을 찾아갈려고 벼르고 있었는데 여기서 만나다니?

아무튼 꿩먹고 알먹고, 도랑치고 가재 잡았다. 저기도 여기도 한 두 포기가 아니다. 마음껏 신나게 담았다.   

 

도랑가에 개버무리가 사위질빵처럼 바위든 풀이든 나무든 가리지 않고 기세좋게 덩굴을 뻗고 있었다.

이 녀석은 잎자루를 덩굴손처럼 사용하면서 주변 풀이나 나무 줄기를 감고 오르고 있다.   

 물가에는 궁궁이도 여름 끝 자락을 잡고 마지막 따가운 햇살을 아쉬워하면서 종자를 여물리고 있다.  

 

가을은 여뀌의 계절이다. 냇가에는 여뀌들이 지천이다. 이 녀석 산여뀌가 왜 개울까지 놀러 나왔는지?

벌써 저 혼자 단풍 잔치를 벌이고 있다. 성질 한 번 급하다.

  

황금과 개차즈기가 자리잡은 곳 옆에는 소박한 시골 교회가 있었다.  

 

누가 심었을까? 교회 앞 길 옆에 프렌치메리골드가 참 곱게 피었다. 

 

아이들 웃음소리 사라진지 오래. 반야분교는 1996년에 폐교되었단다.

붉은 철문에 갇혀진 학교는 아무도 놀러와 주지 않은 잡초 가득한 운동장에 안겨서 늦여름 심심한 하품을 하고 있었다. 

 

교사 옆 한켠에 보호수로 지정된 늙은 춘양목이 낯선 방문객을 호기심 담긴 표정으로 내려다 보고 있었다.

 

 개버무리 마음껏 담고 되돌아 나오는데 들어갈 때 못 보았던 절벽의 개버무리가 그제서야 눈에 들어 온다. 

 

 노루목 고개를 넘으면서 잠시 차를 세우고 이틀의 휴가를 반추한다. 이틀 동안 얼마만큼의 평화를 얻었을까?

내려다 보이는 반야 계곡은 저리도 무심한데 저 무심함이 내 마음에도 가득 찼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