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8. 11. 비로봉-연화봉-죽령 14.5km
태풍이 올라 오고 있단다. 그 여파로 비가 많이 온다고.
7월 말 부터 피기 시작한 시기를 중나리를 늦추면 놓칠 것 같아서
경북 북부 지역은 오후 늦게나 비가 온다고 해서 새벽부터 서둘렀다. 6시에 비로사 부근에서 오르기 시작하는데 구름 안개가 자욱하다.
오전에만 걷혀 주면 좋으련만 기대는 기대로 끝나버렸다. 비로봉에 오르니 온천지가 부옇고 시계 100m도 안된다.
정상 부근에 중나리와 싱아, 제대로 된 파란여로를 만났다.
바람이 너무 세차고 구름에 안개비를 품고 있어서 아침을 먹을 수가 없다.
국망봉 쪽에 대 군락지가 있다고 해서 가다가 포기하고 북편 계단에 앉아서 아침을 해결한다.
거센 바람으로 추워서 한기가 온다. 우의를 꺼내 입으니 한결 낫다.
계단 좌우에는 야생화가 지천이었다. 소백산은 십여년 전에 올라보고 처음이다.
능선은 흙이 훼손되는 걸 막기 위해서 탐방로와 계단을 많이 설치해 놓았다.
쉽싸리가 층층이 꽃을 피우고, 때늦은 초롱꽃이 탐스럽게도 하얀 초롱불 켜고 안개비를 맞고 있다.
잎이 유난히 커서 큰산꼬리풀로 추정되는 꼬리풀도 한창 개화 중이다.
국망봉에서 연화봉 쪽으로 향하는 능선에도 꽃밭이 계속되었다.
왼쪽 남사면은 세찬 바람으로 풀꽃이 춤을 추는데 비하여 오른쪽은 느긋하고 조용한 모습으로 대조를 이룬다.
국립공원관리사무소겸 대피소 가기 전까지 둥근이질풀, 참취, 바디나물과 어울려 중나리 군락이 계속되었다.
꽃은 지천으로 흐드러지고 있었지만 이눔의 날씨는 조금만 양보해 주면 안될까?
풀밭은 안개비로 맺힌 물방울을 달고 있어서 잠시만 돌아 댕겨도 바지가랑이에 물이 줄줄 흐른다.
소원하던 중나리는 원없이 담았으니 슬슬 연화봉 쪽으로 이동을 한다.
등산로 옆 볕이 잘 드는 곳에 털부숭이 구슬댕댕이를 만났다. 근데 2m 정도의 관목으로 알고 있는데
일반 교목 수준으로 4m 정도나 되는 엄청 큰 녀석을 만나서 깜짝 놀랐다.
9월쯤 되면 껍질이 벗겨지면서 빨갛고 투명한 속살을 내다보이는 열매를 드러낸다.
올해 가장 풍성한 난쟁이를 만났다.
이 녀석은 바위에 딱 달라붙어서 태풍이 와도 아랑곳 하지 않은 기세다.
남사면 해가 잘 드는 바위에 느긋하게도 꽃을 피우고 있다.
더 이쁜 녀석을 담으려고 바위 끝으로 다가가니, 동행한 ㄷㄱ님이 기겁을 하고 옷자락을 잡는다.
근데 사진을 열어보니 화면 외쪽만 뿌옇다. 가만히 보니 에고~! 안개비에 렌즈가 흐려진 모양이다.
연화봉을 오르는데 후둑후둑~! 드뎌 비가 내린다.
아직 10km 는 더 걸어야 하는데 그동안 담을 꽃이 무지 많으텐데 에거거! 아까워라.
연화봉에서 죽령까지는 7.4km, 관리소 차가 다니는 넓은 시멘트 포장길이 계속된다.
별 변화 없는 이 길은 사실 너무 지루하다.좌우를 두리번 거리면서 살피니 돌바늘꽃이 보인다.
이런 자생 환경이면 돌바늘꽃이 있을만 하다 했더니 용케도 있는 걸 찾았다.
꽃을 하나 뜯어서 해부해 보니 암술이 공모양에 가느다란 암술대가 있다. 돌바늘꽃이 맞다.
허나 비가 와서 카메라를 꺼낼 수도 없다. 요건 금대봉의 돌바늘꽃이다.
나도하수오와 개현삼, 산외를 만났으나 눈에만 담을 수밖에 없다.
장구채가 꽃을 피우고 있는데 유난히 커 보인다 했더니 ㄷㄱ님이 잎이 작으니 상대적으로 커보일 뿐이란다.
송장풀이 있길래 잠시 뜸한 비를 틈 타서 담아보았는데 그런대로 잡혔다.
마음을 다스리는데 자연 치유가 가장 좋다.
설악산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정신 없이 돌아 댕겼다. 덕유산, 석개재, 금대봉, 함백산, 소백산,
그리고 주변의 가까운 산까지 시간만 나면 뺄뺄거리고 다녔다.
오른 반쯤밖에 허락하지 않은 소백산 아그들이 눈에 아른거린다.
함백산과 금대봉도 비를 만나서 이틀 뒤에 다시 갔으니
소백산도 다시 가 줘야 산신령님이 섭섭해 하지 않으시겠제?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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