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8. 21.
"아그야 화 풀어라. 아까 니 욕한 거 미안허다."
다시 네비게이션을 살살 달래었다. 제발 좀 쉬운 길로 델꼬 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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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가자는 연락을 받고도 일정이 어긋나서 자꾸만 뒤꼭지가 간질거렸는데
ㅇㄱ님의 블러그에 올린 사진을 보니 입맛이 소태 같더니 급기야 배가 살살 아파오기 시작하는 거시었다.
그리 멀지도 않다는데....그리 힘들지도 않다는데....
해서 기어이 보물지도 한장을 확보하여 폭염주의보가 내린 날씨에도 얼음 물병 하나 챙겨들고 길을 나섰겄다.
아니 지도도 아니다. 인삼밭이 나오면 다리를 건넌다..... 왼쪽에 무덤이 있다.
처음 갈림 길에서 왼쪽 오솔길. 갈림길이 나오면 더 확실한 1시 방향 오솔길로 20미터...어쩌구 저쩌구 하는 글 지도이다.
에혀~! 아무튼 네비게이션은 믿들 말어~!
이 눔은 젤로 가까운 길을 안내한다꼬 공사 중인 완전 비포장 높은 고개로 끌고 가는디....아고야~~!
"이눔의 시키야! 내 혼자서 워뜨게 이 높은 호젓한 고개를 오른다냐?"
끙~! 어쩐지 내가 생각하고 있는 길이 아니고 완전 반대쪽으로 안내하는 것 같더니
내가 생각하던 길이 아니다 그랬을 때 알아 봤어야 했는디...
에혀~! 고개 아래서 쳐다 보다가 입맛만 다시고 포기하였다.
오늘 이 부근에 모임도 있고 해서 겸사로 무엽란을 알현하려 했더니 근석하고 내캉은 인연이 없나 보다...
방향을 돌려서 모임 장소로 가던 중 졸음이 와서 잠시 쉬는데...아무래도 도저히 포기가 안 되는 기라.
"아그야 화 풀어라. 아까 니 욕한 거 미안허다."
다시 네비게이션을 살살 달래었다. 제발 좀 쉬운 길로 델꼬 가라고.
그렇지 이번에는 내 생각했던 길로 제대로 가는기 아닌감?
옳다꾸나. 쾌재를 부르는데. 수첩에 쓰여진 글 읽으랴, 위치 확인하랴 눈이 바쁘다.
인삼밭을 찾아서 어슬렁 어슬렁 차를 끌고 가니 마지막 주차할 곳까지 제대로 찾았다. 야호~!
이제는 걸어야 한다. 굴을 지나고 오솔길을 따라 가다가 오른 쪽으로 빠졌는데 아차~! 길이 없다.
너무 일찍 빠졌나 보다. 길도 없는 솔숲을 헤매는데 위쪽에서 두런두런 사람소리가 들린다.
옳다꾸나! 저 사람들도 혹시? 무조건 나뭇가지를 헤치면서 위쪽으로 오르다 보니 오솔길이 다시 나타난다. 휘유~!
주차할 때 차 한 대가 서 있는 것이 좀 께름칙 했었는데 오히려 사람들 소리 덕분에 길을 찾게 해준다.
마지막 포인트가 눈앞에 나타난다. 여기서 15~20m 반경 안에 대흥란이 있다..
헌데....??? 안 보인다. 일주일 사이에 다 사그러졌단 말가?
"안녕하세요?"
혹시나 대흥란을 찾아 왔나 싶어서 먼저 걸었다.
남정네 두 사람이 바위 위에서 쉬다 말고 내 말소리에 깜짝 놀라서 두리번 거린다.
헌데 손에는 남채한 보춘화 세포기가 들려져 있다. 다른 때 같았으면 한 마디 했을 텐데...
난데 없이 나타난 아줌씨가 신기한가 보다. 나도 난을 채취하러 온 줄 안다.
혹시 대흥란 보았느냐고 물으니 대흥란이 어떤 꽃이냐고 되묻는다.
손에 든 수첩을 좀 보자기에 혹시나 이 사람들 또 그 무엽란 마저 캐 갈까 봐 얼른 내려 와 버렸다.
마지막 포인트까지 찾았는데 여기서 포기할까 보냐?
전화로 ㅇㄱ 님께 SOS를 요청하니 그 부근을 찬찬히 살피란다.
전화기를 주머니에 넣으면서 고개를 돌리는데,
소나무 둥치 아래 꽃송이도 풍성한 대흥란이 배시시 웃고 쳐다보고 있는 게 아닌감?
우와~~! 찾았다. 야호~~!
연분홍 꽃색이 가랑잎과 비슷하여 찬찬히 살피지 않으면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발 밑을 조심조심 하면서 샅샅이 훑으니...이미 사그러진 것들도 보이고 싱싱한 녀석들이 8포기나 된다.
아그야! 니 볼라꼬 오늘 내 고생 많이 했다 아나?
가벼운 발걸음으로 내려오는데 누가 바지가랑이를 잡는다.
아까 왜 발로 차고 지나갔냐고...나는 왜 못 본척 하냐고...
아고야~! 오솔길 한 복판에 대흥란 한 포기가 여기 저기 상처 난 모습으로 원망 섞인 하소연을 하고 있다.
미안허다. 아그야! 내 너를 못 본척 할 뻔 했구나. 근디 하필 여그 자리를 잡었냐?
테두리방귀버섯 요건 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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