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 크고 안 싱거운 사람 없다더니.
지난 연수 때 충청도 계시는 도장학사님 한 분 분임 발표 전에 여담 한 마디 하신다기에 다들 귀를 쫑긋하는디.
그 분 며칠 전 우리의 배꼽을 빠지게 한 일이 있던 터라 또 무슨???? 기대에 찬 눈빛으로 그 장학사님의 입을 주시하는디.
나이 오십 중반의 장학사님의 초임교사 시절이니.
아마 호랑이 보리 깜부기 따 먹던 시절 쯤이었겠나?
시골 벽지 학교 3학급에 근무하게 된 선생님. 1~2, 3~4, 5~6학년이 복식으로 반을 편성하여 한 교실에 두 학년을 모아 놓고 교실 양편에 두 무더기로 책생을 배치해서 공부하는 것이 일반적인 복식학급인디.
그 샘님 맏 상주가 1학년에 입학을 하였으니 당연히 1~2학년 담임은 하지 않겠지 기대를 했겄다. 허나 절~~~때로, 죽어도 1학년은 못하겠다고 동료 샘 두분이 고개를 절레절레.
부탁하고 애원하고 은근한 협박에도 불구하고 물 먹은 지푸라기 처럼 질긴 고집으로 굳건하게 고사하는 두 분 샘 땜시.
'하긴 속 썩어도 내가 썩는 기 낫지 아들놈 허물을 남이 들추어 내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은 아니제.'
울며 겨자먹기로 아들 놈 담임을 할 수 밖에 없었겄다.
그 장학사 샘. 두 학년을 한 시간에 공부시키려니 별 수가 있간디. 2학년 수학 공부할 때, 1학년 하나 둘 갈키고 2학년 음악 공부하면 국어책 보고 글씨 쓰게 하고.
헌디 언니들 노래 부르는데 글씨가 눈에 들어 오간? 1학년 꼬맹이들 벌써 2학년 노래 따라 부르니 그 시절에 벌써 조기 유학이 아니라 조기 진급이 다 끝이 났단다.
예나 지금이나 받아쓰기는 1학년의 통과 의례라. 받아쓰기 채점을 하다보면 벼라 별 녀석들이 많다.
또박 또박 깨알 같이 받아 쓴 차단지 형. 지 아는 글자만 듬성 듬성 써낸 뻐끔뻐끔 형 쓰긴 썼는디 도대체 글자 조합이 안되는 묻지마 형 아버지를 써야 하는데 어머니를 쓰는 동문서답 형에....
암튼 하루는 2학년<국어> 공부시키면서 1학년 <받아쓰기> 시험을 치는데.
"야들아, 선생님 부르는 거 받아 써라. 알았나? "예" "순이가 어디를 가노?" 1학년 : "몰라요" "1학년 말고 2학년이 대답하는 거야" 2학년 : "네 학교에 갔어요" "그래 <학교> " 1학년 : 그거 몰라요. 안 배웠어요." "아니 <학교>는 받아쓰는 거 아니고"
에거거~~! 아무나 선생하나. 긍께 선생 응가는 강생이도 안 먹는다 하제이요.
"자아~! 1번, <아버지>"..............
잠시 혼란한 사태를 수습하고 받아쓰기를 시작혔는디 녀석들 글씨를 모르니까, 옆에 녀석의 공책을 자꾸만 들여다보는 거여
"이 놈들~! 보지 말고 써! 알았어?"
그 왕방울 같은 눈을 크게 뜨고 으름장을 놓았으니 1학년 아그들 자라목이 되었겄다.
암튼 두 학년을 번갈아 보면서 무사히 받아쓰기를 끝내고 채점을 혔는디.
아뿔싸~! 천재를 바라는 것도, 영재를 기대하는 것도 아니고 우등생 정도는 될 줄 알았던 아들 놈.
받아쓰기 공책에 글자는 간 곳 없고 무슨 기호를 그리 많이 그려 놓았는지...
차단지형은 온데 간데 없고, 성큼 성큼형이라면 그나마 천만다행일 텐데 묻지마형에 배째라니.
왕눈이 장학사샘, 아들 공책 본 순간 머리 두껑 열려뿌렀다.
“이노무 시키!“ 어느새 노랑병아리 아들 뒤통수에 손이 가 있더란다. 우와앙~~~! 아들놈은 대성 통곡이고 사태는 수습이 안되고....
저녁. 대문간에서 부터 기척을 살피며 퇴근을 하니
으메! 기죽어라이~ 싸모님 새파랗게 도끼 눈을 하고 기다리고 있더란다.
“아를 그렇게 때리는 애비가 어딨어요? 당장 전학시킬라요.”
“무슨 놈이 받아쓰기를 그리도 못하냐? 자가 아무래도 바보 아녀?.”
“근데 너 참말로 배운 글씨를 모르겄냐? 왜 그렇게 틀렸냐?”
“씨이~! 아빠가 보지 말라 그랬잖아.”
“누가 받아쓰기를 보고 쓴다냐?”
"그래서 눈감고 썼단 말이야. 훌쩍~"
“?............................!!!!!”
"푸하하하~~~!" 강의실에 있던 연수생들 완전히 쓰러졌습니다.
어쩐지 지금도 배꼽이 뻐근한디 아무래도 그 때 옆에 계시던 샘님 배꼽을 주워서 끼웠나 베요. 낄낄.....ㅎㅎㅎㅎ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