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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나누기/사는 이야기

혼자 떠나기

by 여왕벌. 2000. 1. 15.
 

 

혼자 떠나기


  방학을 반납하다시피 하며 몇 달을 준비하던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서 의기소침해 있었다. 기분의 전환이 필요했다.

  아무 것도 준비하지 않고 화장 케이스와 속옷, 대금만 차에 싣고 경주로 향하였다. 어머니한테는 친구들과 함께 며칠 여행을 한다고 안심시켜 드리고 혼자 핸들을 잡았다. 언젠가 유홍준의 문화 유산 답사기를 읽으면서 감은사 탑에 매료되어 꼭 한번 가 보리라 생각했었는데 기분 전환도 할 겸 목적지를 경주 쪽으로 잡은 것이다.

  방학 중에 있는 친구를 불러 함께 갈 수도 있지만 일없이 수다를 떨어야 하고 신경을 써야 하기 때문에 홀가분하게 떠나는 것이 지금의 나에게는 가장 위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바쁘게 달릴 일도 없다. 하기야 신나게 달릴 기분도 아니니까. 가면 가는대로 밀리면 밀리는 대로 맡기고 마음 편하게 가는 거다.

  혹시 아는가, 나처럼 솔로로 여행을 하는 남정네 하나라도 눈 맞출 수 있을지. 경주 보문 단진지 보물 단진지, 거기 가면 꽤 폼도 잡을 수 있고 근사하게 칼질도 할 수 있겠지? 선재 미술관에 가서 작품 감상으로 정신적인 포만감도 얻고 말이야. 센스 있는 신사의 안내를 받을 수 있다면 금상첨화겠지.

 

 "아줌마! 이거 안 보여? 눈까리는 뒀다 뭐 해?"

 

  경주에 들어서면서부터 고무 타는 마찰음과 함께 볼따귀에 꽃히는 욕설로 정신이 번쩍 든다. 빨간 신호가 이마에 닿고 있다.

  그래, 허튼 것에 마음을 빼앗기면 몸과 마음이 다 상하는 법이지. 언제 돌아간다는 계획도 없이 무작정 혼자 여행에 나서는 것부터 잘못이다. 괜히 멍청한 객기 부리다가 다치지. 서울에서 한 번 당하고도 정신을 못차리냐?

 

  서울에서는 그랬다. 그건 순전히 그 놈의 여관이 문제였다.

  그래도 그때는 혼자는 아니었다. 제대 말년의 처녀 교사 둘에게 서울 바람이나 쐬라고 연구학교 보고회 참관의 기회를 준 것이다.

  해 거름 무렵, 서울교대부속초등학교의 위치를 확인하고 분식집에서 허기와 추위를 면한 후 잠잘 곳을 찾아야 했다. 지리에 조금 익숙한 곳까지 전철로 옮기자고 했으나, 날도 춥고 늦었으니 가까운 곳에 방을 잡자는 C선생의 말에 그대로 따르기로 하였다.

  무턱대고 큰길을 따라 가면서 모텔을 찾으니 쉬울 리가 있나. 걸을 수록 주위의 가로등이 어두워지고 길다란 담장만 계속되었다. 발도 죄어오고 더 늦기 전에 택시를 잡을까 생각하고 있는데, 아뿔싸 한 녀석이 달라붙은 것이다. 늦은 밤 멀쑥한 여자들이 두리번거리며 계속 걷고만 있는 것을 발견한 놈은 주변이 으슥하고 오가는 사람이 드물자 드디어 행동을 개시한 것이다.

  놈은 코트 주머니에 손을 찌른 채로 옆에 바짝 붙었다.

 

 "20만 원"

 

  낮은 저음이 전달되었다.

  아이고 죽었다. 서울 가면 코 베어간다는 얘기는 그 때 그 시절에 나 있는 줄 알았더니 내가 오늘 당하는구나. 주머니 속에는 칼이 있겠지? 그래도 흉악한 놈은 아닌 모양이다. 바로 들이대지 않고 돈만 내놓으라는 걸 보면. 바바리 주머니에 출장비로 받은 돈 봉투가 있으니 여차하면 던져주고 튀어야지. 끌려갔다가는 끝장이다. 이 위급한 상황을 어떻게 모면하지? 혼자라면 이 정도 분위기에서는 튀어볼텐데.......

  오만가지 생각이 번개처럼 교차한다.

 

"아줌마, 아파트 어디야? 20만 원만 줘요."

 

  어라? 어째 좀 이상하다. 집은 왜 물어? 강도가 째째하게 20만원이 뭐야. 계속 따라오면서 말을 붙이던 놈에게 대꾸도 않고, 나는 갑자기 지나가던 택시를 세웠다. C선생을 무조건 택시 속으로 밀어 넣고 가까운 모텔로 데려가 달랬더니 교대 시간이라서 방향이 안 맞다나. 하여튼 사람만 좀 떼어달라고 사정을 하였다. 차가 움직이자 놈이 황급히 길을 횡단하여 건너 편으로 걸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모텔 방에서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다가 그 놈이 남창이라는 생각이 퍼뜩 났다. 아하! 그래, 남창이 있다더니. 강도치고는 어째 좀 이상하다 싶었다.

  미친 놈! 멀쩡하게 생겨 가지고 어디 할 짓이 없어서 몸을 팔아.

뭐? 우리 보고 20만원을 내 놓으라고? 천만 원을 줘도 안 간다 이놈아.

  킬킬거리고 웃었지만 서울 나들이치고는 꽤 값진 경험이었다. 남창이었기에 망정이지 정말 강도였다면 서울 어느 한 구석에 피 꽤나 뿌렸으리라.

  

  경주에서도 그런 봉변을 당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겠나. 하여튼 몸가짐을 조신하게 해야할 것이다.

 

 전망이 좋은 모텔에 숙소를 정하고 커튼을 열어젖뜨리니 힐튼 호텔이 바로 앞이다. 대금을 들고 요즈음 한창 연습하던 수연장지곡의 중간 부분까지 바람 새는 소리를 내어 본다. 아무런 생각 없이 창밖을 내려다보며 오가는 사람들의 여러 모습을 구경하니 한결 마음이 가라앉는다.

  참 좋다. 이렇게 혼자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이. 식당 주인이나 모텔 카운터의 종업원이 힐끔거려도 전혀 개의할 필요도 없다. 그들이 허망으로부터의 탈출, 이 자유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으랴. 실연 당한 여자의 자살 여행 정도로 여기겠지.

  저녁 후 힐튼 호텔 커피숍에서 괜히 시간만 죽이고 있다. 하지만 무료하지는 않다. 여러 군상들의 구경만으로도 따분함을 잊을 수 있다. 연인끼리 어깨 붙이고 앉아서 소곤거리는 모습은 뒷꼭지만 봐도 행복에 겨워 보인다. 업무로 만난 사람들은 몸을 약간 숙이고 이야기가 심각하다. 새로운 사람이 오고, 악수하고 서로의 안부를 묻고.

  꽤 핸섬한 신사가 내 쪽을 주시하고 있다. 모른 척 고개를 돌려본다. 그러나 은근히 기대하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의 앞에 세련된 파트너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애꿎은 시계만 들여다보다가 바람 맞은 여자처럼 방으로 돌아온다.

 

  이튿날 뒷통수에 꽂히는 종업원들의 시선을 못 본 척 된장찌개로 늦은 아침 식사를 마치고, 보문단지 안에 있는 선재 미술관으로 향한다. 미술관에서 만난 사람은 대상을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게 팽창시켜 양감을 강조하는 훼르난도 보테로였다. 그의 작품 속의 인물은 귀여운 아이 같다.

  이 겨울동안 내가 씨름하던 인물 중에 보테로도 있었지. 큐비즘의 피카소에서부터 액션 페인팅의 잭슨 폴록에 이르기까지 모두들 나를 녹초로 만들어 버렸다.

  패배로 인한 구겨진 자존심을 회복하기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평화를 위해서 나는 그들을 용서한다. 언젠가는 다시 그들을 만나야 하니까. 멋진 안내는 없었지만 보테로와의 테이트로 한결 밝아졌다.

 

  보테로를 뒤에 두고 동쪽 토함산 쪽으로 핸들을 돌린다. 꼬불거리는 추령 고개를 넘고 황룡 계곡을 벗어나자 한참 동안의 곧은 길 끝에 드디어 감은사 삼층석탑이 나타난다.

  오! 감은사의 탑은 정말로 장중하다. 탑은 무뚝뚝한 남성처럼 버티고 서서 저만치 들판을 내려다보고 있다. 탑신에 올려진 돌덩어리가 엄청스러운 위압감을 가져온다. 그래서 유홍준은 이 탑의 칭찬에 침이 말랐구나. 탑의 크기가 이렇게 웅장한 걸 보면 절의 규모는 대단했겠지. 그의 지나칠 정도의 찬사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

  따사로운 볕을 받으며 탑의 기단에 앉으니 왼편 동쪽으로 열려 있는 감포 바다로 눈이 간다. 그 끝에 대왕암이 신라의 부활을 꿈꾸며 누워 있다.

  절터를 돌며 들떠 있는 풀뿌리를 밟으니 먼지가 폭삭거린다. 징검다리 건너 듯이 주춧돌을 세며 모든 집착으로부터 마음을 비운다. 무심하게 시간이 흘러도 아무도 가자고 재촉하지 않아서 좋다.

 

  겨울이라 해안 도로는 한가로워서 조급함이 없다. 도로를 따라 느적느적 달리다 보니 점심 때가 늦었다. 구룡포 부둣가의 인심 좋은 횟집에서 횟밥 한 그릇으로 늦은 점심을 때우니 해가 기웃하다. 인상 좋은 아주머니는 혼자서 좋은 여행이 되길 바란다며 조심하란다. 마음을 써 주는 그녀가 고맙다.

  바위에 부딪히는 파도를 내려다보며 수평선의 시원함에 시간을 빼앗기다가 그만 포철 공단의 퇴근 물결에 휩쓸려서 빠져나오느라고 땀 꽤나 흘렸다. 갑갑한 일상에서 벗어나려고 했는데 하필 러시 아워라니.

  영덕 해상 공원 아래의 모텔까지 자동차에 속력을 붙인다. 모텔에 혼자 드는 여자를 보고 남이야 이상하다고 생각하든지 말든지 겨울 밤의 파도 소리는 감미롭지 그지 없다. 찰싹거리는 파도 소리로 잠을 청하니 꿈 속까지 행복하다.

 

  강릉까지 목적지를 잡으려다가 축산 가까운 작은 어항에서 여행을 끝낸다. 기분 전환도 어지간하고 겨울의 강원도는 차를 몰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따끈한 오후의 햇살 속에 움직이는 것들은 모두 자기 역할에 몰두하고 있다. 평온함 움직임들이 살아았음을 확인시킨다. 망태기 속에는 꿈틀거리는 문어가 탈출을 꿈꾸는데 작은 바위의 갈매기는 포만의 휴식에 여유롭다.

  푸른 청어의 싱싱한 비늘이 싱그럽기만 하고 잡고기를 고르는 늙은 모자의 손놀림이 정겹다. 생소한 여자의 말붙임에도 경계하지 않고 푸근한 웃음으로 돌려준다.

 

  "이 청어는 일본으로 바로 수출 되니더."

 

  청어가 이렇게 잡히는데도 제숫거리를 구하지 못했었다는 내 말의 대답에 생기가 돌고 있다. 

  참으로 예쁜 어항이다. 해안에 다닥다닥 붙은 집들과 파도에 일렁이는 정박된 어선, 널려 있는 그물과 고기들의 평온함이 엉겨 있던 가슴 속의 응어리를 녹여준다.

  내 속에는 방랑벽이 좀 있는 것 같다. 책을 읽다가도 한참 후면 부석사에서 어정거리고 있질 않나, 그것도 해거름에. 단양의 어느 고개 위에서 바흐의 무반주 첼로 조곡에 빠져 있기도 하고, 소백산 능선을 걸으며 낯 모르는 사람들과 철쭉에 대한 탄성으로 즐거울 때도 있었다. 토요일 퇴근 길을 영덕으로 향한 적도 여러 번이다. 그래서 이 작은 어촌에서 또 혼자 어정거리고 있는 것이다.

 

  혼자서 무슨 청승이냐며 이해할 수 없다는 사람들을 내가 이해할 수 없다. 오히려 가끔은 혼자서 탈출을 시도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굴레의 속박에서 벗어나서 삶을 재정비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새로운 시작의 단초가 될 것이다.

  하기야 지친 심신을 추스르기 위해서, 혹은 어떤 결단의 고민을 위해서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을 가져 보고 싶은 생각들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저런 사정이 있고 자신의 의지보다 타의에 의한 사정으로도 선뜻 행동으로 옮길 수 없을 뿐이리라.

  이젠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조금 우려하던 뜻밖의 봉변도 당하지 않았고 며칠간의 일탈 덕분에 여유 있게 재도전을 준비할 수 있어서 다행스럽다.

 

2000. 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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