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번 째 행복
당신이 살아가는 데 가장 소중한 세 가지 행복 조건을 고르라면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사람마다 그 소중함의 기준이 다를 것이므로 각양각색의 대답이 나오겠지만 대체로 건강, 재물, 배우자를 선택하지 않을까 싶다.
그건데 여기에 더 보탠다면 몰두 할 수 있는 일과 가르침을 줄 수 있는 스승, 외로움을 달래주고 하소연할 수 있는 친구가 아닐까.
건강이나 재물의 정도는 사람에 따라 그 기준이 다르더라도 나름대로의 수준으로 가지고 있겠지만 존경할만한 스승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쉽지 않다. 나 또한 초등학교 시절부터 대학까지 여러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았지만 내가 살아가는데 영향을 준 스승은 잘 떠오르지 않는다.
그런데 느지막이 시작한 대학원에서 교육자로서 제대로 살았다고 평가받을 만한 교수님을 만나게 되었다. 원하던 미술교육을 공부하게 되었다는 데 공부하는 즐거움도 있었지만 더 큰 소득은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깨우쳐 주신 교수님을 만났다는 것이 나에게는 큰 행운이었다.
사실 교대 2년을 더 채우기 위한 계절 학부 과정 때 교수님의 강의를 들은 적은 있지만 그 땐 무척 어려워서 연구실에 감히 들어가 보지도 못하였다. 철저한 강의시간 지키기와 빈틈없는 학사 운영으로 깐깐하기로 명성이 높아서 융통성이 없이 빡빡한 분이라는 불평을 들을 정도였으니.
학부 과정 때는 휴일도 반납하고 판화실에서 헤어 드라이기로 살얼음을 녹여 가면서 판화 작품을 제작하고 도서관을 오가며 제법 열심히 공부하긴 했지만, 나의 주변 없는 성격과 어려운 분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교수님과는 특별한 인간 관계를 가지지 못하였다.
어떻게 좀 대강 끝내 주었으면 하고 운을 떼다가는 혹독하리만치 심한 꾸중과 질책을 면할 수가 없었다. 표정의 변화가 없고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으시는 분이라서 몇몇 학생을 제외하고는 가까운 이야기를 할 기회가 없었으며 그 중에 나도 끼어 있었다. 학생들 중에는 그런 교수님을 존경하는 파와 기피하는 파가 분명하게 나누어져 있었다.
교수님은 교육 전문직으로 출세 가도를 달리고 있던 쉰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미술교육을 바르게 세워보고자 하는 일념으로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늦깎이 교수로 모교에 전직을 하셨다, 그러니 미술 교육에 대한 열정이 오죽했으랴. 당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너무 적음이 안타까울 지경이셨단다.
교수님은 경대사대부속초등학교에서 15년의 근무와 교육 전문직에서의 경험으로 교육대학에 재직하시는 동안 우리의 교육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고 이론만이 아니라 현실적인 교수 방법을 피력하셨다.
한국 미술 교육의 100년 역사에 대한 책을 출간하여 우리의 미술 교육을 사적으로 정리하셨고 미술 감상교육에 대한 연구의 결과가 곧 책으로 출간 될 예정이라신다. 늘 책을 읽는 모습을 보여주시던 교수님은 찾고 있던 책을 사가지고 올 때가 가장 행복하다 하신다. 서점에 얼마나 자주 가느냐는 물음에 모두들 우물우물 대답을 제대로 못하자 책방에 자주 들르라는 핀잔에 부끄러움으로 민망해야 했다.
교수님은 스스로 노력하는 태도를 높이 사주셨다. 대학원생들이 각자 해결해야 할 주제에 대하여 필요한 자료를 미리 안내해 주는 일은 드물었다.
"교수님, 무얼 찾아보면 됩니까?"
"도서관에 가 보세요."
아무런 준비 없이 도움을 얻으려다가는 뒤통수만 긁적일 수 밖에 없었다.
"교수님, 제가 자료를 찾아보니 이런 것들이 있었는데, 더 참고 할만한 것이 있습니까?"
어느 정도 열심히 노력한 흔적이 보이면 참고할 논문과 누구의 무슨 책을 찾아보라는 간단한 몇 마디 소득을 얻을 수 있었다. 공부를 쉽게 하려고 생각하지 말라는 경고인 셈이었다.
칭찬에도 참 인색하셨다. 첫 학기 첫 시간, 여름 학기동안 해결해야 할 주제에 대한 오리엔터이션이 있었다. 그런데 바로 이튿날 미술 교사론에 대한 주제 발표가 나에게 주어지는 게 아닌가? 그것도 소 논문식으로 글의 체제를 갖추어야 한다는 부언과 함께. 교수님의 성품에 사정을 봐 주고 미루고 하는 것은 도저히 상상도 못하겠고 가슴이 답답한 게 참으로 낭패스러웠다. 동동거리며 참고할 책을 뒤지고, 미술과 사무실의 컴퓨터에 매달려 있다가 숙직자에게 쫒겨나면서 까지 교사론을 정리하느라 밤을 꼬박 세웠다. 짜박거리는 눈을 가늘게 뜨고 수업 시각에 맞추어 과제물을 펼쳐 놓으니 교수님 왈,
"순발력 있네."
교수님의 최고의 칭찬이셨다. 물론 문장의 연결 관계가 안 맞고, 단락의 핵심이 잘못 진술되었고, 남의 글을 인용하였으면 그에 대한 나의 생각이 있어야 하고, 본론 속에서 상반되는 이야기가 있다는 등, 첫 발표이기에 무자비한 글의 해부가 있었지만.
첫 학기에 공부하는 훈련을 톡톡히 치른 우리5명의 둘째 학기 수업 시간은 그런 대로 활기가 있었다. 글의 논리를 분석하고 참고한 이론에 대하여 질문하고, 주제를 해결하기 위한 글의 목차를 뜯어 고치면서 나름대로 논리를 세우려고 하였다. 그 중에는 교수님의 눈 높이에 미치지 못하여 다시 글을 써야하는 곤욕을 치루기도 하였고, 점하나 번호 하나에도 지적을 당하기도 했지만 줄기차게 공부에 몰두 하였다.
한 번은 새로운 이론에 대한 나의 글을 가지고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문학적 이론인 수용 미학을 미술 감상 교육에 접목시킬 가능성에 대한 탐색이었으니, 나 또한 그 이론이 충분히 소화되지 않은 상황이었고 동료 두 명 또한 새로운 이론에 대한 의문으로 정답 없는 토론의 혼란 속에 빠져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한참 논란을 벌이다가 교수님께 도움의 눈길을 보내니,
"재미있네"
하시면서 빙긋이 웃으시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셋이서 나름대로 논리를 펴려고 애쓰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시면서 아마 흐뭇하셨던 것 같았다.
얼마 전 후배 원생의 안타까워하던 탄식이 이해가 되었다. 동료 원생의 주제 발표에 대한 무반응과 교수님의 정리 내용만 부지런히 받아 적기만 하는 모습에 한숨을 푹 쉬더라는 것이다. 그 분의 욕심에 못미쳤던 모양이었다. 실망이 오죽했을지 상상이 되었다.
그렇게 칭찬에 인색하고 혹독하게(?) 훈련을 시켜도 한 가지 존경할 만한 사실은 열심히 노력하는 것에 대하여 공정하다는 것이다. 두 학기 동안 최고의 학점을 받고서 그것을 깨닫게 되었다.
물론 과제 해결을 위하여 학기 내내 일요일에도 집에 내려오지 않고 공부를 하기도 하였지만, 다섯 명 중에는 총애하는 제자도 있었고 출신 학교라는 정실이 작용할 소지도 있었다. 그러나 공부하는 과정과 공부한 결과에 대하여는 사심이 작용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는 그 인품에 다시 한번 존경을 보내게 되었다.
마지막 겨울 학기, 덕수궁의 인상파전을 관람하자는 즉흥적인 제안에 폭설 속의 새벽 기차를 타고 분에 넘치는(?) 여행을 하게 되었다.
밀레, 르노와르, 세잔느, 마네, 모네, 고호, 고갱 등 대표적인 인상파 화가의 작품으로 프랑스 오르셰 미술관에 있는 작품 중의 일부를 빌어 와서 대대적인 홍보를 하면서 전시를 하는 것인데, 두어 개를 제외하고는 작가를 대표할만한 작품이 아니라서 조금은 실망스러운 기분이었다.
호암 미술관의 이인성 회고전 관람으로 그 기분을 만회하고 돌아오던 밤 기차에서 오징어를 뜯으며 소주잔을 기울였다.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교수님이 뱉으신 한마디는 의외였다.
"사람은 방법과 목적이 같아야지. P의 목적이 아무리 옳다고 해도 과정이 옳지 않으면 결과는 빛을 잃고 말아. 도올의 강연이 요즈음 절실하게 느껴지더군."
평소에 불필요한 말을 잘 하지 않으시나 요즈음은 가끔 분위기에 따라 가벼운 농담도 더러 하시곤 했지만 남의 좋지 않은 이야기를 하는 것은 들어보지 못하였는데 이름까지 거론하시는 품이 평소답지 않으셨다.
교수님을 지나칠 정도로 따르던 사람으로부터의 섭섭한 일을 겪으시고 인간적인 실망이 크셨던 모양이었다. 저간에 얽힌 사정을 조금은 짐작하고 있었기에 그 서운한 마음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이 되었다.
사람에 따라 목적과 방법을 옳게 행하여 인품과 능력을 바르게 평가받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수단과 방법이 상식을 벗어나거나 비열하기까지 하여 그 뒤에 온갖 구설수를 몰고 다니기도 한다. 또는 목적도 방법도 우리의 인식이나 규제에서 벗어나 신체적 자유로움을 박탈당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우리는 알량한 칭찬이나 비위 맞춤에 현혹되어서 잠시 판단이 흐려지는 경우가 있다. 교수님의 씁쓸한 미소를 보면서 인간 관계에서 지나침은 오히려 경계해야 할 것이라는 것을 다시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학기를 마친 후 교수님께 처음으로 고마움의 메일을 보냈다. 공부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니 기쁘다는 답신과 함께 책 한 권이 배달되었다. 뜻밖의 메일을 보시고 조금은 흐뭇하셨을까?
세 해동안 교수님과의 만남은 나도 무언가 의미 있는 흔적을 남겨야겠다는 삶의 목적을 갖게 하였다. 과연 어떻게 하면 바르게 사는 것인가를 생각하게 해주었고 게을러지려는 나를 추스르게 해 주었다.
나는 아직 건강하고, 불편하지 않을 만큼 매달 필요한 돈도 받고 있고, 위로 받고 의논할 수 있는 벗도 있으며 내가 몰두할 수 있는 일이 있으니 이만하면 일반적인 행복 조건은 갖추고 있다 할 수 있겠다.
더 보태에서 인간으로서 교육자로서 어떻게 살아야할지를 깨닫게 해준 스승까지 있으니 다섯 번째의 행복 조건은 나의 삶을 더 윤기 있게 만들지 않겠나.
20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