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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나누기/사는 이야기

사곡 일기 3-소주 넉잔

by 여왕벌. 2007. 9. 6.
 

오늘 아침은 평소 보다 늦어서 출근 길이 몹시 바빴지.


8시 30분까지는 출근해야 하는데, 5분쯤 늦었지 뭔가?


마음은 바쁘고 아픈 다리는 느긋하게 가자고 하니

윗몸이 앞으로 구부정한 이상한 폼으로 교무실을 들어섰다네.


"죄송합니다 지각했습니다"


일부러 큰소리로 인사를 하고 가방을 의자 뒤에 두고 한숨을 돌리는데,

교무실 소파에 연지라는 4학년 여자아이가 비스듬하게 앉아 있지 않은가?


교장선생님과 오늘 수료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이녀석이 뭐라는 거야.


"뭐라고?"


교장선생님이 언성을 높여서 연지한테 되물으니 녀석이 어눌한 소리로 또 묻는다.


"이쪽에 앉아도 돼요?"


"그래 앉아라."


폼이 좀 나는 옆의 소파에 앉고 싶었던 녀석이

옆 자리로 옮겨 앉는 품이 어쩐지 좀 이상한 느낌이 들었지.


"교무부장님, 연지네 집에 전화해서 집에 보내세요. 걷

지도 잘 못하는 애를 학교에 보내면 어째노?"


"양호선생님 자 델꼬 가서 양호실에 눕히세요."


교장선생님의 말을 듣고 무슨 일이 있나 싶었다네.


"교무부장님 연지가 어디 아픈가요?"


학교에 늦은 내가 미처 상황을 파악하지 못해 교무부장에게 슬쩍이 물었지.


"자요? 술 먹었어요."


"예~에?"


애가 술을 먹다니? 그것도 여자애가?


도대체 부모가 어떻게 했길래 애한테 술을 먹이냐니까.

지혼자 그냥 먹었단다. 소주 넉 잔을.


그 술이 아직 깨지 않아서 아침에도 몸을 가누지 못해 휘청거렸던 거지.


"그 집요? 애가 넷인데. 엄마는 사고가 좀 떨어지고요. 야한 비디오 보다가 함부로 돌려서 애들이 보고 학교에 와서 그걸 이야기 하고 그런대요."


이런! 참. 기가 막힐 노릇이지.

4학년짜리가 술을 먹고 헤롱거리도록 있도록 부모가 뭐한다니?


어제 졸업식에서 장학금 20만원을 받은 그 언니는 모두 칭찬을 하던데.


그 부모는 담임한테 고맙다는 인사는커녕,

학교 앞 식당에 교직원들과 참석한 손님, 학부모가 함께 점심 식사를 하는데

6-7명의 학부모 중에 연지네 부모가 모두 와서는 고기도 더달라고 해서 먹었다지 않은가?


그 자리에서 연지 아빠도 술을 많이 먹었다는데, 그 사이에 연지도 집에서 한 잔을 한 모양이야.


세상에!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네.


결국 전화를 받은 아버지가 연지를 데리고 갔지만.

술먹었다는 말을 아빠한테 이야기하지 말라는 연지의 부탁을

우리는 들어주지 못했지.


시골은 이렇다네. 아마 이건 서곡일 수도 있을 거야.



2003.2.22 사곡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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