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일찍 돌아오는데 서편 담장 옆 텃밭에 흩어져 있는 나무 둥치가 눈에 띈다.
제법 큰 대추나무가 있던 자리였다.
새순이 한 곳에 소복소복 돋아나는 겨우살이병 때문에 올 대추는 한 알도 구경하지 못하였던 터라 콩밭에 그늘만 지운다고 베어버려야겠다고 노래를 하시더니, 어머니께서 기어이 나무를 베어 버리신 모양이었다. 그래도 작은 나무는 아직 병이 들지 않았는데 모두 잘라버린 게 아쉬웠다. 큰 것만 베어달라고 이웃 어른께 부탁했는데 당신이 마실 간 사이에 확인하지 못해서 그렇게 되었다며 어머니도 아까워하셨다.
서편 쪽문을 열고 텃밭으로 나가니 대추나무 두 그루가 토막이 난 채 어지럽게 널려 있다. 심은 지 15년은 넘었으니 지름이 10㎝는 족히 넘는 밑둥치가 하얀 속살을 드러내고 있다.
대추나무에 병이 들기도 하였지만 좁쌀 같은 꽃이 많이 일어도 병해충 방제약 한 번 뿌려주지 못하니 열린 대추가 가을까지 익을 리 만무하였다. 올해도 작은 나무에는 제법 많은 대추가 하얗게 매달렸는데 붉은색이 돌기도 전에 나뭇잎에 거미줄이 도르르 엉기더니만 잎이 마르고 익지 않은 풋대추가 나무 밑에 수북히 떨어졌다.
"그 동안 제삿상 대추는 걱정 없이 잘 썼는데...... ."
어머니는 못내 아쉬우신 모양이다.
우리 집 대추는 논이 옆에 있는 덕분에 물 공급이 수월하였던 터라 알이 무척 굵고 맛도 있었다. 탱주만한 것도 제법 섞여 있어서 몇 알만 쥐어도 주머니가 불룩할 정도였다.
붉다 못해 검은빛이 도는 굵은 대추알을 우적우적 씹으면 새콤한 대추 향과 함께 짭짤할 정도로 진한 단맛이 혀를 오그라들게 한다.
알이 굵은 것들만 골라온 대추알을 씹으며 책을 읽고 있노라면 시골이 아니고는 느끼지 못할 고향의 편안함에 행복하기 그지없다. 단맛에 취해서 대추 바가지에 손이 들락날락하다 보면 금새 한바가지가 바닥을 드러낸다. 대추씨를 바르느라 혓바늘이 돋고 뱃속이 부글거려도 또 빈 바가지를 들고 마당의 대추 멍석으로 나간다.
금방 딴 대추는 물기가 많아서 슴벅슴벅하니 씹히는 느낌도 좋다.
하루쯤 볕을 본 대추는 껍질이 조금 쪼그라들어도 먹을만하지만 며칠 지나면 허벅허벅하여 짭짤한 단맛을 잃고 만다. 그래서 어머니는 알 굵은 놈들을 골라 비닐봉지가 탱탱하도록 담아서 냉장고에 넣어두시곤 늦은 저녁 퇴근한 딸년의 며칠 입다심 거리로 준비해 주셨다.
두 그루의 대추나무는 해마다 넉넉하게 단맛을 전해 주었다. 대추가 한창 열릴 땐 두말이 넘을 정도로 온 마당에 빨갛게 널려 있었다.
풍성한 대추는 1년 동안 제삿상 제숫거리를 해결해 주었고, 이웃에게 한 바가지씩 정을 나누기도 하였다. 썰어 말린 호박, 양대 콩과 함께 대추를 박은 막설기는 입 속에서 뭉근하게 전해지는 대추의 단맛으로 일품이었는데......
아버지 기일에 쓸 대추를 반됫박에 6000원이나 주셨다면서 잔가지를 새끼줄로 묶으시는 어머니는 한 나무를 남겨 두지 못한 것을 못내 애석해 하셨다. 다행히 마당 동편 기웃한 구석에 내 키만한 대추나무가 지난 해 몇 덩이의 꽃을 피웠지만, 짭짤한 대추의 단맛을 보려면 아직 몇 년은 기다려야 될 것 같다.
마당이 널찍하여 아버지는 곳곳에 나무를 심어 놓으셨다.
서편 화장실 옆에는 단감나무가 타박한 가지를 나지막하게 펼치고 서 있다. 지난 가을에는 제법 모양새 나는 단감을 두 접이나 매달았었다. 대문 양쪽에는 두 그루의 감나무와 모과나무가 더위에 헐떡이는 맹돌이(늙은 개 이름)에게 짙은 그늘을 만들어 준다.
수돗가에는 어머니가 시집 올 때에 이미 몇 알의 배를 달고 있었다는 70년 가까이 되는 늙은 배나무가 해마다 하얀 꽃을 흐드러지게 피우고 있다.
옆반 김선생이 추리라는 과일도 있냐고 키득거리고 웃던 자두나무는 저절로 고사하여 그루터기만 남아 있고, 온몸에 가시를 박고 있는 음나무, 매화 모양의 꽃을 조롱조롱 피워대는 명자나무, 뿌리에서부터 잔가지만 소복한 반송, 이른 봄에 잎도 없이 제일 먼저 진자주색 꽃을 피우는 박태기, 이미 베어버린 대추나무......
그러고 보니 꽤 많은 나무가 마당 안팎에 있다.
보기 좋게 심어서 가꾸었으면 도시의 다듬어진 정원 못하지 않았을 테지만 마당의 빈 구석구석에 심겨져서 그냥 저대로 자라고 있다.
다듬어 줄 주인을 잃은 나무들은 해가 갈수록 꾀죄죄하게 땟국물이 흐르는 부랑자처럼 몰골이 사납다.그것이 보기 싫으셨던지 지난 한식 때 내려온 맏이에게 어머니는 나무의 큰 가지들을 뭉청 자르라고 하셨다.
"어무이 일부러 심기도 할 낀데, 왜 나무는 자르니껴. 집도 가려주고 괜찮니더만."
"야야, 그눔의 감나무는 아무짝 쓸 데 없다. 감이 빠져서 추접고 맛도 없으이 짤라뿌라."
"배나무는 또 왜요?"
"장 단지에 그늘져서 안 된다."
대문 옆의 감나무는 정수리와 오른쪽 큰 가지를 자르고, 배나무는 장독대쪽으로 난 큰 가지 두 개를 베라고 하셨다. 모과나무 또한 가로수 삭발하듯이 잘라버리라는 것이었다.
"어무이요, 나무는 함부로 베는 게 아이시더. 너무 자르면 죽고 균형이 안맞으면 넘어가니더. 그라고 배나무는 손대지 마시더."
일부러 심으려고도 하는데 잘 자라고 있는 나무를 베라니. 식구도 없는 집에 그나마 나무라도 풍성해야 덜 허전할 것 같아서 어머니를 만류했지만 한 번 마음 먹으면 절대로 굽히지 않으시는 어머니의 생각을 돌이킬 수는 없었다.
대문 옆의 감은 풋감이 많이 빠져서 문 앞을 지저분하게 하였고 단맛이 별로 없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렇지만 노란 감꽃이 문간 바닥을 덮어 꽃방석을 만드는 봄과 주홍색의 감이 가지를 휘어지게 하는 가을의 감흥을 잃어버리기 싫었다.
볼록볼록 아기 주먹만한 꽃덩어리를 피우던 배나무는 70노령이라 밑둥치가 갈라 터졌고 체관부가 3분의 1쯤 삭았지만 이사를 할 때마다 따라다니면서 물기 많은 시원한 배를 달아주었다. 달빛 환한 봄날 방문을 열면 찔레꽃 같은 배꽃의 향기와 눈부시게 시린 하얀 꽃잎에 가슴이 저렸었는데.....
이태 전부터 배나무는 알 솎음을 해주지 않으니 열매가 충실하지 못하였고, 한두 번의 태풍에 아래채 지붕을 방망이질하며 떨어져버렸다. 그나마 몇 알 남은 것은 벌레들의 극성에 추석의 제숫거리조차 남지 않았다. 올 봄에는 갓돋은 여린 잎이 진딧물의 등살에 오소소 다 떨어지고 두 번째의 잎을 피우고서야 기운을 차렸다.
"나무가 있으이 뭐하노. 마당만 어지럽제. 약을 쳐 줄 사람이 있나, 솎아줄 사람이 있나."
"지가 올 봄에는 약통 메고 약 치면 되잖니껴."
"일요일도 없이 맨날 밤중에 들어오는 니가 오죽 잘 치겠다."
어린 시절 새끼줄을 매고 그네 타던 배나무를 자르는 것이 무척 아까웠지만 배나무 또한 감나무처럼 오른쪽 가지를 두개나 잃고 서편 지붕 쪽으로 기웃이 누워버렸다. 결국 어머니의 핀잔처럼 가을이 다되도록 약통도 한 번 메지 않았고 벌레가 시식한 떨어진 배를 주워서 한 조각 맛보았을 뿐이었다.
대추나무는 밑둥치까지 잘려져 버렸지만 팔 잘린 배나무와 감나무, 모과나무는 오는 봄에도 여전히 꽃을 피울 것이다. 배나무 가지에는 올해도 꽃눈이 제법 많던데 눈이 시리게 하얀 꽃의 향연은 생각만 해도 소녀처럼 가슴이 뛴다. 이웃 어른께 부탁하여 두어 차례 약을 뿌려주면 시원한 배맛도 볼 수 있겠지. 잘려진 나무라도 그저 잘 자라 주었으면 좋겠다.
올해는 약통을 둘러멜 여유가 있을런지......
2005.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