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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나누기/사는 이야기

병아리 시엄니 왈

by 여왕벌. 2005. 8. 17.

덥지요?

지금 사무실에서 일하다가 머리도 식힐 겸
그저께 배꼽 잡은 이바구 하나 전합니다.

선생이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습관이 아이들 심부름 잘 시키듯이
집에 오면 요것 조것 남편한테나 시어미 한테 심부름(?) 시키는 버릇이 있다고
선생 며느리는 안 본다는 장래 시어미들의 동맹결의가 있었다는 전설도 있지만

굳이 그런 버릇을 예로 들지 않고라도
특정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일상사 중에도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직업 의식이 드러나는 기라.

며칠 전 같은 학교에 근무하셨던 교장샘을 만났지라...
곧 며느리를 보게 되었다고, 걱정이 늘어져서 어쩔 줄을 모르는디

이 교장샘한테 군의관으로 군복무를 대신하는 아들이 있었겄다.
이 아들! 그리 좋다는 신부감 다 들이대도 외고개를 치더란다.

종래는 니 맘에 드는 샥시 따로 있냐니까
꼭 결혼해야 하는 건 아닌데 지 맘을 편하게 해주는 아가씨가 있단다.
그냥 그 아가씨랑 결혼 하면 행복할 것 같다고 하더란다
하이고 경상도 사내 아니랄까 봐 종아종알 토 다는 아가씨는 싫단다

지 행복할 거 같다는데 막을 부모 어디 있간디
그라문 한번 델꼬와 보랬는데,
말 그대로 쥐방울만한 아가씨를 델꼬 나타났단다.

그려도 내 식구라 쥐방울 표현은 좀 심하다 혔는지
쥐방울이 아니라 아담하더라고 다시 고쳐 말하는디
초등학교 교사인데 얌전해 보이기는 하더라나

근디 문제는 아가씨가 아니라 교장샘이었다.
아들이 델꼬 온 며느리감을 앞에 두고 어쩔 줄을 몰라
온 몸이 근질근질, 시선을 어디 두어야 할지, 안절 부절이라
왠지 며느리 선 보는 자리가 어색하고 앉아 있을 자리가 아닌 것만 같더란다.

교장샘 부군이 교수님인디, 장래 며느감을 앞에 두고 하는 질문
“에! 할아버지는 뭐 하시던 분인고?”
"할아버지는 오래 전에 돌아 가셔서....."
“당신은 젊은 사람들한테 할아버지 뭐하시던 거는 와 물었싸요?"
괜히 면박만 주면서 시부모를 선 보이는(?) 자리를 무사히 마쳤는디

아가씨만 보내려는 아들 등 떠밀어
지하철 타는 곳까지라도 바래다 주라고 밀어내고 나니
휘유! 그제사 맘이 편해 지더라나?

그란디 얼마 전 장마가 져서 경북 북부지방이 뉴스에 오르락 거리는 일이 있었겄다.
어느 날 손전화에 문자 메세지가 와서 열어보니 며느리감의 안부였단다.
“어머님! 비가 많이 오는데 괜찮으세요?”

그 메시지를 보는 순간 온 몸에 소름이 조옥 끼치면서
“엄마야! 여보! 이거 좀 봐요. 아유! 나는 아직도 이상해”
호들갑을 떠니, 옆지기 교수님 허허! 웃을 수밖에.

이 시엄니, 갑자기 나타난 며느리라는 낯선 인물에 대하여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았덩기라.
그러니 어머님이란 호칭에 질겁을 하여 근질거릴 수 밖에.

그래도 더듬 거리면서 보낸 문자
“괜찮으니 걱정 말아요”
“~ 걱정 말아라” 가 아니라 “걱정 말아요”였단다

두 번 째 직접 안부 전화
“어머님, 잘 지내세요? 저희 학교는 오늘 방학했어요. 방학 때 안동에 내려갈께요”

며느리감의 안부 전화에 또 온 몸이 간잘 간질하던 시엄니 감 왈.
“아 그래요? 벌써 방학 했어요? 그리 일찍 방학 하믄 그 학교는 출석일수가 돌아가나?”
“출석일수는 잘 모르고요...방학을 일찍 하네요....”

그 이바구 듣던 세여인네,
마시던 커피잔 뒤집어지는 줄 알았슴다.
이바구 하는 교장샘이나 이바구 듣는 세 여인네나
다들 그만한 자리에 있는 교육자들이라.

에효! 울 교장 시엄니, 며느리와 처음 전화에 출석일수라니
초년병 병아리 교사가 출석일수가 어떻게 돌아가는 지 알게 무엡니까?

결국 교장 시엄니는 초등 교사 며느리와 핵교 이바구만 했다 아입니까.
시엄니의 교장샘 같은 질문에 그 며느리 을매나 불편했을까요이?

“오냐! 니는 방학동안 우째 지낼라 그라노? 결혼 준비 할라몬 맴이 바쁠텐디...”
와 이렇게 시엄니 같은 이바구를 못하나 이 말인기라.
지가 시엄니 대신 해뿌까요? ㅎㅎㅎ....

에그! 병아리 시엄니!
자기가 생각해도 하도 어이가 없어서
옆지기와 함께 배꼽을 잡았답니다.

말투는 공대도 아니고, 그렇다고 하대도 어색하고
어정쩡하게 " ~~~는가? "~해요"로 얼버무리고
아예 호칭은 부르지지도 않고 본론부터 말한단다.

“어머님! 말씀 낮추세요.”
하대를 못하는 시엄니가 을매나 어려웠을꼬.

그래도 이젠 전화 오면 조금은 익숙해 지고 있다면서
병아리 시엄니 새식구 들어오면
불편해서 어쩌냐고 한 걱정 하고 있습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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