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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사진/여왕벌 사진 자료

네팔 트레킹6(1993. 12. 29~1994. 1. 7)--포인세티아 꽃 만국기 아래

by 여왕벌. 2003. 1. 14.

 

 

네팔 히말라야 산록의 한 마을 축제에서 : 

 

 

걷이가 끝난 마을 근처의 야영지에 짐을 풀고, 포터들이 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일행과 함께 마을을 둘러보았다. 붉은 흙벽으로 쌓아올린 십여 호의 집들이 띄엄 띄엄 자리 잡고 있는 마을은 조용하다. 간혹 아이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이 돌담 뒤에서 얼쩡거린다.


마을 한쪽 널찍한 논에 청년들이 공을 차느라 분주하다. 요령 있게 공을 다루어서 용케도 산 아래로 굴러 내리지 않는다. 한쪽에는 옛날 시골의 학예회처럼 천으로 커텐을 만들어 놓고, 포인세티아 꽃잎을 엮은 긴 줄을 운동회 만국기 줄처럼 이리 저리 쳐 놓은 것을 보니 축제가 있을 법하다.   무대도 만들어 놓고 마을 유지들은 운동회 때 교장선생님처럼 커다란 종이꽃을 가슴에 달고 목에 힘주고 있었다.


우리는 서툰 영어와 몸짓으로 마을 사람들과 어울렸다. 네팔에서는 초등학교부터 영어를 교과목으로 정하여 의사소통이 원활하다. 우리의 영어가 오히려 더 서툴다.


막걸리 같은 뿌연 술잔이 오가고, 쟁반에 담은 풀기 없는 식사를 손으로 집어먹으면서 사람들과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었다. 젊은이들은 우리 일행에게 한국으로 초청해 줄 것을 부탁하면서 주소를 적어주었다. 그들에게 한국이 황금의 나라로 알려진 것 같았다. 실제로 우리 일행의 가이드 중에는 스무살 남짓한 예쁘장한 청년이 여행사와 계약하여 한국과 네팔을 오가며 안내를 하고 있었는데 그는 마을 청년들의 부러움의 대상이었단다


어둠이 내리자 남포불과 랜턴으로 불을 밝혀 놓고, 마을 사람들은 기대어린 시선으로 축제장 앞에 모였다. 모두들 판쵸를 하나씩 두르고 있다. 산악 지대라서 담요처럼 생긴 판쵸는 추위를 이기기 위한 그들의 평상복이다.


커텐이 열리면 그들의 노래와 춤이 시작되고, 고운 전통 옷을 차려 입은 아가씨는 포인세티아 만국기 아래서 간드러지게 춤을 추었다.


1993년의 마지막 밤, 그들은 그렇게 망년회를 하고 있었다. 가슴에 커다란 꽃을 꽂은 마을 촌장과 어른들의 위엄 있는 표정 뒤로 저 멀리 안나푸르나의 자태가 달빛에 신비스럽게 빛을 발하고. 우리도 아리랑 가락과 어깨춤으로 그들과 함께 마지막 밤을 멋드러지게 보냈다.


야영지에 돌아 온 우리는 그 기분을 그대로 삭이기 아까워 오만가지 민요를 부르며 애국심(?)을 발휘하였다. 괜히 집에 대한 향수로 술잔과 모닥불을 벗하며 밤을 새웠다.

포인세티아만국기아래.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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