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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사진/여왕벌 사진 자료

네팔 트레킹8(1993. 12. 29~1994. 1. 7)--죽음은 한 줌 재로 남고

by 여왕벌. 2003. 1. 14.

 

 


닷새째 마지막 야영을 하면서 붉으스름한 강물에 아쉬운 대로 땀 냄새를 씻을 수 있었다. 만년설이 녹은 물이라 꽤 차가웠지만 근질거리는 머리를 감을 수 있다는 후련함으로 추위를 감수할 수밖에.


밤 늦게 포카라로 돌아오던 우리의 미니 버스와 대형 버스의 충돌로 중상자 4명과 경상자 다수 발생, 돈을 흔들어 간신히 잡은 트럭에 실려서 포카라 병원에 도착했지만 형편없는 의료 시설로 절망하고.


찌그러진 의자 사이에서 구출된 나는 입 주위가 찢겨지고 다리를 움직이기 힘들 정도였지만‘“노 프라브럼!” 이라는 한마디로 원 외 취급을 당했다. 하는 수 없이 알코올 묻은 솜을 찾아서 입 주위의 피를 닦고 이불 없는 침상에서 추위와 충격으로 덜덜 떨며 밤을 보냈다.


사고 장소가 까마득한 계곡 중간이었다니 생각만하여도 끔찍하였다. 초파일 봉정사에 연등을 올린 정성이 갸륵하여 부처님이 보살피셨나 보다. 히말라야 어느 산 중턱에 산귀신이 될 뻔하지 않았나.


“옴 마니 밧매 훔!”


이튿날 오후 네팔 주재 한국 영사관까지 동원되고서야 특별 헬기를 타고 카투만두로 이송되었다. 그 몇 시간 동안 여러 인간의 이기적인 본성에 실망도 컸지만 진정으로 걱정하고 살펴주는 또 다른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어서 다행하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도 일그러진 얼굴을 손수건으로 가리고 절뚝거리는 다리를 끌며 마지막 카투만두 시가지 관광을 하였다.


카투만두 동쪽에 있는 파슈파티나트 힌두 사원바닥에 엎드려 묵상을 하고 있는 순례자는 무심의 지혜를 생각하게 하였다. 사원 이웃의 개방된 강변 화장터에는 방금 도착한 시신이 장작더미 위에서 연기를 내고 있었다. 경제적인 능력에 따라 시신을 태우는 장작의 양이 다르다는데 돈이 부족하여 장작을 넉넉하게 사지 못한 덜 태워진 시신은 그대로 개천 물에 버려진단다.


그 개천에 세수도하고 그릇도 씻고 한단다. 그것을 구경하고 있는 나와 외국 관광객들의 삶이나 죽은 자의 삶이나 그 끝은 모두 똑같은 것을. 인생의 허망함을 느끼게 했다. 무표정한 얼굴로 시신을 뒤적이는 모습을 보니 산중에서의 사고가 다시 떠오르며 몸서리쳐졌다.

화장터앞에서.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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