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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나누기/발길 따라

그리운 네팔 히말라야1-네팔의 수도 카투만두

by 여왕벌. 2012. 1. 14.

 

1993년 12월 29일 출발하여 해를 넘긴 1994년 1월 7일 귀국한 히말라야 트레킹이라...벌써 18년 전의 기억이다.

여행 기록을 제대로 해 두지 못하였고 필카로 담은 사진이라 스캔하니 해상도도 떨어져서 팽개 쳐 두고 있었는데

야생화 동호회에 올라온 네팔 트레킹 여행기를 읽으니 그 기억이 새로워서 사진을 중심으로 다시 정리해 본다.

 

여행기간 : 1993. 12. 29.~1994. 1. 7.

트레킹 코스 : 카투만두--포카라--베그나스 호수--순도리단다--지사파니힐--카르포타--포카라--카투만두

 

 

<네팔의 수도 카투만두>1993. 12. 29.

 

1년 동안 벼르던 네팔에 도착하기까지 12시간의 비행은 너무 짧았다.

비행기 창으로 멀리 조망되는 히말라야 연봉을 보면서 트레킹에 대한 기대로 다들 들떠 있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네팔의 수도 카투만두 시가지를 내려다 본 첫 느낌은 "붉다"는 것이었다.

 

그 느낌에 대한 의문은 산록을 트레킹하면서 풀리게 되었다.

산지를 형성하고 있는 토질이 붉은색이어서 건물의 벽이 붉으니 전체적으로 붉은 인상을 줄 수 밖에 없었다.

 

 

 

봉고 버스를 타고 호텔에 도착한 우리는 호텔 앞에 한글로 적은 환영 현수막을 보고 반가우면서도 어법에 맞지 않는 표현이 애교스러워서 잠시 웃을 수 있었다. 한글 현수막까지 준비되어 있는 걸 보면 우리가 의뢰한 여행사에서 이곳을 많이 이용하는 모양이었다.

 

짐을 옮겨주며 방으로 안내하던 호텔 종업원이 목에 건 하회탈에 자꾸만 눈길을 주었다.

1500원 짜리 목걸이라 부담도 없고 종업원이 친절하기도 하여 선뜻 건네주니 좋아라 만족스런 얼굴로 꾸벅 인사를 한다.

호텔방은 그런 대로 깨끗하였는데 이상한 냄새는 다소 견디기 힘들었다.

  

 

 

 

네팔은 지구상에 남은 유일한 힌두 왕국이란다. 관공서나 호텔, 식당에는 왕과 왕비의 사진이 걸려 있다.

마치 예전 우리네 학교 교무실에 대통령 사진 걸어놓은 듯이.

호텔 방에서 내다 본 카투만두 시가지 모습이다.

 

 

 

오후 시간 잠시 짬을 내어서 시가지 구경을 나갔다. 네팔 현지 가이드와 함께 숙소 주변의 시가지를 둘러 봤다.

우리는 어느 가게 앞에서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가이드가 거래하는 가게인 것 같은데 문을 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가게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기 무료하여 잠시 기다리는 동안 가게 앞의 땅콩을 팔고 있는 소년과 사진을 찍었다.  

 

 

 

 

 

18년 전의 카투만두였으니 지금과는 비교 할 수가 없을 것이다. 포장이 안된 거리에 악취가 많이 났다.

담구석에 쭈구리고 앉아서 방뇨를 하고 있는 남자가 사진의 배경에 찍히기도 할 정도로 거리는 어지러웠다.

 

포장이 덜 된 카투만두 시가지는 매연과 먼지로 부옇게 흐렸고 신호등이 드문 거리에서는 교통 사고가 나지 않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곳곳에 지저분한 오물로 악취를 풍겼지만 관공서나 힌두사원이 그나마 수도의 체면을 세워 주는 것 같았다.

그래도 인도의 거리보다 깨끗하다고 하니 그저 그런가 보다 할 수 밖에 없다.

 

한참을 기다려 기념품 가게 문을 열었지만 관광 기념품이라고 전시해 둔 물건들이 조악해서 선뜻 손이 나가지 않았다.

 

 

 

<카투만두의 사원> 1994. 1. 6.

 

트레킹 마지막 날 사고의 후유증을 무릅 쓰고 사원 관광에 따라 나섰다.

 

마지막 트레킹을 마치고 포카라로 이동하는 중 우리 일행의 봉고버스와 대형 버스가 산악 도로에서 정면 충돌, 4명의 중상자.

나도 찌그러진 의자 사이에서 간신히 구출, 앞 의자에 입 부분을 그대로 부딪혀서 입술 아래가 찢어지고 이빨이 흔들흔들,

충격으로 전신이 덜덜덜.... 트럭에 실려서 구멍 가게 같은 포카라 병원으로 간신히 이동. 아무런 치료도 받지 못하고 no problem! 한 마디

 

중상자는 병원에 누워 있는데도 사고로 퉁퉁 부은 일그러진 얼굴을 복면 강도처럼 손수건으로 가리고 마지막 시가지 관광에 따라 나섰다.

절뚝거리는 다리를 끌며 따라다니는 나를 보고 호텔에 누워 있지 않고 따라 나섰다고 친구가 개똥 나무래 듯 한다.

 

카투만두 동쪽에 있는 파슈파티나트 힌두 사원바닥에 엎드려 묵상을 하고 있는 순례자는 무심의 지혜를 생각하게 하였다.

 

 

힌두 사원의 벽은 붉은 벽돌로 이루어졌고, 지붕은 우리의 기와 구조와 비슷하였다.

네팔과 한국의 비슷한 지붕의 구조를 어떻게 관계지어야 할지 ....동양의 불교 문화권의 지붕 구조는 비슷한 면이 많이 있는 것 같다.

 

 

 

 

 

박터풀 사원이다. 이 곳에서 코끼리 조각상을 기념으로 샀다.

처음에는 많은 값을 부르다가 돌아 갈려고 할 때 쯤에는 그 값이 반 이하로 떨어진다.

뼈로 깎은 거라고 우기길래 그런 줄 알았더니 뼈는 아니고 틀에서 찍어낸 것이었다.

 

 

 

 

사원 이웃의 개방된 강변 화장터에는 방금 도착한 시신이 장작더미 위에서 연기를 내고 있었다.

 

 

 

경제적인 능력에 따라 시신을 태우는 장작의 양이 다르다는데 돈이 부족하여 장작을 넉넉하게 사지 못한 덜 태워진 시신은 그대로 개천 물에 버려진단다. 그 개천에 세수도하고 그릇도 씻고 한단다. 그것을 구경하고 있는 나와 외국 관광객들의 삶이나 죽은 자의 삶이나 그 끝은 모두 똑같은 것을. 인생의 허망함을 느끼게 했다. 

 

 

 

무표정한 얼굴로 시신을 뒤적이는 모습을 보니 산중에서의 사고가 다시 떠오르며 몸서리쳐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