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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나누기/발길 따라

겨울 해인사 소요

by 여왕벌. 2011. 1. 16.

2011. 1. 15.

 

언제 갈까? 내일은 가야지. 이 번 주말 쯤에 가야지. 다음 주에는 꼭 가야지.... 벼르기만 했다.

갑자기 추워지는 날씨에 미루고 눈이 와서 미루고 했는데, 멀리 있는 꽃동무가 갑자기 해인사에 가 보고싶단다.

혼자였다면 또 추워서 웅크리고 있을 게 뻔한 일이었기에 꽃동무를 핑계로 길을 나선다.

 

안동에서 두어 시간의 길을 달려서 해인사 부근에 도착하니 12시 30분 쯤 점심 때에 딱 맞췄다.

산채 정식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성보박물관 앞에 차를 주차하니 눈을 덮고 있는 가야산 산세가 기운차다.  

 

 

 

산사로 가는 길은 우람한 붉은 금강송과 느티나무, 서나무, 갈참나무 등의 고목들로 숲이 우거져서

겨울 나목에서 느껴지는 허전한 배고픔이 덜하다.

 

 봄을 기다리며 겨울잠에 빠진 서어나무 꽃눈에 잠시 눈길을 준다. 동아의 껍질이 물고기 비늘처럼 질서가 있다.

 

 

서어나무의 우람한 근율질에 잠시 유혹당해 본다.

 

목도리며 장갑이며 단단히 단도리를 한 때문이기도 하지만 골 깊은 곳이라서 생각보다 바람이 심하지 않아서 그다지 춥지는 않다.

1km 남짓한 길을 하늘로 솟은 나뭇가지 끝에 시선을 두면서 여유있게 걸었다.

 

망원렌즈 없이도 충분히 담을 수 있다는 붉은겨우살이에 대한 엉터리 정보로 실망이 컸지만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갈참나무 가지 높이 소복소복 자리를 틀고 있는 겨우살이가 얼마나 풍성한지

똑딱이 카메라를 이마에 들이대어 보는 것만으로도 그저 흐뭇하기만 하다.

 

 

 

커다란 겨우살이 무더기 사이에 드물게 붉은 열매를 달고 있는 붉은겨우살이가 보이기도 한다.

 

 

 

  

 

방문객 들고 나는 길 자리만 말끔할 뿐, 숲 아래 바닥을 덮고 있는 눈은 그대로 이불을 만들고 있다.

 

  

 

푸른 기운이라곤 대나무 잎새 뿐, 추운 날씨라 녹지 않고 그대로 쌓여진 눈이 포근하다.

겨울 숲의 가난함을 눈이불로 덮어 버리니 그 서러움이 덜해서 좋다.

 

 

부도의 비석 지붕도 눈 모자를 그대로 쓰고서 오가는 사람들 구경하고 멀뚱하니 서 있다.

 

 

일주문 을 지나니 천이백 년의 세월을 기억하고 있는 느티나무 한 그루, 그 삶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1945년 고사하였단다.

 

 

하늘로 하늘로만 향하고 있는 전나무도 그 세월의 무게가 만만치는 않을 테지만 

산사와 주변 수림이 어우러진 설경은 그 풍광의 매력에 빠져들지 않을 수가 없다.

 

 

천년의 세월에 지쳐 생의 연줄을 놓은 녀석 옆에 그 천년의 세월을 버티고 서 있는 다른 녀석은

그 무게를 감당하고 있는 땅 깊은 곳 뿌리의 울음 소리 듣고 있을까?  

 

 

일주문을 지나 봉황문을 뒤로 하니 해탈문이 앞을 막는다.

해탈문을 겸허하게 통과하여 계단을 오르면 석탑을 앞에 둔 해인사의 중심 법당인 대적광전이 나타난다.

해인사는 통도사, 송광사와 더불어 삼대 사찰로 꼽힌단다.

 

보통 한 사원의 큰 법당에는 부처상이나 보살상이 모셔져 있는데 큰 법당의 이름은 그 안에 모신 주불에 따라 결정된다.

해인사는 화엄경을 중심 사상으로 하여 창건되었으므로, 거의 모든 절이 흔히 모시고 있는 석가모니 부처님 대신에

화엄경의 주불인 비로자나부처님이 모셔져 있다. 그래서 법당의 이름도 대웅전이 아니라 대적광전이라고 한단다

 

 

대적광전 왼쪽 작은 건물이 명부전이고, 석탑 왼쪽이 궁현당으로 해인사 승가대학(강원)의 교사(校舍)로 사용되고 있다

 

 

대적광전 오른쪽 측면 벽에는 탱화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부처의 출가에 관련된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려 놓은 것 같다.

 

 

대적광전 왼쪽 뒤에서 멀리 대적광전 뒷통수를 들여다 본다. 앞에 보이는 지붕이 명부전이고 뒤쪽이 대적광전이다.

 

 

대적광전 앞 마당에 있는 3층 석탑을 정중탑이라 부른다. 탑신이 수수하고 단아한 담백함에 눈길이 간다.

석탑 옆에 얌전히 서 있는 한쌍의 당간지주가 정직해 보인다. 천년 고찰의 당간지주에는 어떤 이야기가 스며들어 있을까?

 

할머니 한 분이 탑 앞에서 정성을 다하여 합장하고 머리 조아리더니 굽은 허리로 만족한 걸음 옮기신다.

할머니의 염원이 비로자나불 미소까지 전해졌겠지?

 

 

 

해인사의 중심 법당인 대적광전 앞 석탑을 가운데로 하여 왼쪽에는 궁현당, 오른쪽에는 관음전이 있다.

오른쪽의 관음전은 현재 강원(승가대학)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약 100여 명의 스님들이 경전을 연마하고 있단다 .

 

건물의 현판은 궁현당과 같이 두 개인데 그 하나는 심검당(尋劍堂)이다 .

심검이라는 말은 모든 번뇌를 베어 버릴 수 있는 지혜의 칼을 찾는다는 뜻으로 수행의 목적을 단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말이다

 

 

 

왼쪽의 궁현당은 해인사 승가대학(강원)의 교사(校舍)로 사용되고 있다.

'깊고 오묘한 진리를 탐구한다'는 뜻의 궁현당은 달리 '부처를 가려 뽑는 곳'이라는 뜻의 선불장(選佛場)이라 불리기도 한다.

 

 

대적광전 뒤에는 장경판전이 자리하고 있다.
장경판전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팔만대장경이라 쓴 현판을 달고 있는 문이다.

이 문을 통과해서는 사진 촬영을 하지 못한다는 경고문이 써 있는 종이가 보인다.

 

 

장경판전 안에서는 촬영을 하지 못하고 나오면서 옆에서 건물 지붕만 담았다.

대적광전의 뒤쪽에 자리 잡고 있는 장경판전은 대장경을 모신 건물로, 이 형국은 대적광전의 비로자나부처님께서

법보인 대장경을 머리에 이고 있는 것을 나타내므로 더욱 의미가 있게 가람이 배치되어 있다.

 

입구자 형으로 지어진 4개의 전각은 북쪽의 건물을 법보전이라하고 남쪽의 건물을 수다라전이라고 하는데, 이 두 건물을 잇는 작은 두동의 건물에는 사간판대장경이 모셔져 있다. 이 장경각은 지금까지 남아 있는 조선조 초기의 건축물 가운데에서 건축 양식이 가장 빼어나서 건축사적인 면에서도 퍽 중요하게 여겨진단다.

 

이 건물은 대장경을 보관하는 데에 절대적인 요건인 습도와 통풍이 자연적으로 조절되도록 지어졌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장경각의 터는 그 토질 자체도 좋거니와, 그 땅에다 숯과 횟가루와 찰흙을 넣음으로써, 여름철의 장마기와 같이 습기가 많을 때에는 습기를 빨아들이고, 또 건조기에는 습기를 내보내곤 하여서 습도가 자연적으로 조절되게 하였다다고 한다.

 

그 뿐만 아니라, 그 기능을 더 원활하게 하려고, 판전의 창문도 격자창 모양으로 하였으며, 수다라전의 창은 아랫창이 윗창보다 세배로 크게 하였고 법보전의 창은 그 반대 꼴을 이루고 있는데, 이는 아주 과학적인 통풍 방법으로서, 오히려 건축 방식이 발달한 오늘날에도 따라가기 어려운 우리 선조들의 슬기를 잘 보여 준다.

 

 

<해인사 가람 배치>

 

 1. 일주문 2. 봉황문  3. 해탈문  4. 우화당  5. 사운당  6. 보경당  7. 종각  8. 청화 
9. 구광루 10. 적묵당 11. 궁현당 12. 관음전 13. 경학원. 14. 대적광전 15. 명부전 16. 응진전 
17. 독성각 18. 선열당 19. 장경판전 20. 퇴설당 21. 조사전 22. 선원 23. 극락전 24. 정중탑 

 

지붕 모서리 서까래에 귀면 탱화가 화려하다. 막새 기와에도 귀면이 장난스레 웃고 있다.

 

 

갑자기 몰아치는 골바람이 지붕의 눈가루를 날린다. 채비를 단단히 하였지만 손끝이 시리고 엉덩이에 한기가 느껴진다.

해넘이가 늘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아직은 짧은 겨울 해라. 먼길 더 지체하지 못하고 서둘러 봉황문을 빠져 나온다.

 

기웃한 햇살에 전나무와 느티나무 고목이 더 우람하게 느껴지는 오후다.

앞서 가던 꽃동무가 뒤쳐지는 내가 궁거워서 걸음을 멈추고 기다려 준다. 오늘 하루 즐거운 시간을 선물해 준 꽃동무가 고맙다.

잠시 산사 옆 찻집에서 차 한잔으로 몸을 녹이고 귀가를 서두른다. 내려오는 길, 산사의 나무들이 자꾸만 뒤돌아 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