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3. 6. 제주 첫날.
그랬다. 안 그래도 세복수초를 보고자 언제 쯤 내려 가나 눈치만 보고 있었는데, 마침 정모가 있단다.
꽃동무한테 내려간다고 귀뜸만 하고 아침 비행기로 모임 시각에 도착, 오랜만에 만나는 꽃동무들과 반가이 수인사를 나눈다.
근데 이눔의 날씨는 내가 내려 가기만 하면 비를 뿌려댄다. 한 두 방울 떨어지는 빗방울이 걱정스러웠지만
우선 백서향을 먼저 보기로 하고 대정의 ㅅㅍ ㅈㅈ곶자왈 쪽으로 향하였다.
곶자왈로 들어가는 양편에는 복분자나무 가시가 바짓가랑이를 잡는다.
복분자나무 사이에 엽축의 날개가 보이는 깃꼴잎을 가진 개산초 잎이 발길을 잡는다.
제주도이 이렇게 개산초나무가 많은 줄 몰랐다. 왕초피나무와 함께 육지에서는 남부 지방이 아니면 잘 볼 수 없는 녀석이다.
가지의 가시는 마주나며 기부가 약간 넓다. 엽축 날개와 잎이 만나는 곳에는 가시가 위 아래로 한쌍이 있다.
개산초를 담느라 뒤쳐지는데 앞선 님들이 빨리 서두르라 재촉이다. 한 곳에 너무 머무르다가는 다음 일정이 늦어 질 수밖에.
드뎌 백서향이 한 두 그루 보인다. 숲과 어우러져 피어 있는 모습에 환호를 지르면서 녀석 앞에 무릎을 꿇는다.
은은한 향이 숲 속을 타고 다닌다. 정원이나 식물원에서 보던 느낌과 자연 상태에서 보는 느낌은 이렇게 다른 것이다.
얼마를 더 걸어가니 숲 아래가 환하다. 많은 개체들이 숲 사이에 자생하고 있다. 개화 적기에 찾아 온 것 같다.
다들 녀석의 향기에 취하고 자태에 혹하여 녀석을 담느라고 옆을 돌아볼 틈이 없다.
차를 타고 오면서 새덕이가 꽃이 필 때가 되지 않았냐고 물었었는데, 한 분이 그걸 기억하고 새덕이 꽃이 폈다고 알려준다.
꽃은 암수딴그루이고 화경이 없는 산형화서를 이루며 붉은 색으로 3-4월에 개화한다.
화피는 4개로 갈라지고 수꽃은 18개의 수술이 6개씩 3줄로 배열되며 암꽃은 긴 암술대가 있는 1개의 암술이 있다.
잎 겨드랑이에 붉은 화서가 덩어리로 뭉쳐서 피어 있는 녀석이라 뭐 꽃이라고 그럴 것 까지는 없지만
새덕이 꽃을 꼭 담고 싶었던 차에 제철 보다 일찍 피어 준 녀석이 고맙다.
마악 피기 시작하는 때라 아직 암술대가 길게 발달하지는 않았지만 하얀 꽃밥이 하나씩 보이는데 암꽃이다.
수꽃은 수술이 많고 꽃밥이 노란색이라 다른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다들 새덕이에 빠져 있는 사이 참가시나무가 있다는 소리에 반갑게 달려간다.
가시나무 속 자료 중에 참가시나무를 아직 못 봤기 때문에 생각지도 않던 녀석을 만나니 더 신이 난다.
가시나무 속 중에서 가장 흔하게 만나는 녀석이 종가시나무다. 비교 자료용으로 종가시나무 잎과 함께 담았다.
참가시나무 잎은 가시나무와 가장 비슷한 피침형으로 잎 상반부에만 날카로운 톱니가 있고 뒷면은 백색 밀모가 있다.
얼룩 무늬 향토예비군복을 입은 육박나무가 눈에 들어 온다. 노각나무나 모과나무처럼 수피의 무늬가 아름다운 녀석이다.
잎에는 거치가 없고 뒷면이 회청색을 띠고 있다.
육박나무와 참가시나무를 담으며 시간을 보내었는데도
다른 이들은 아직도 백서향에 집중하느라고 나가자고 재촉하지 않으면 끝없이 눌러 앉을 태세다
다음 자리로 이동하기 위하여 숲을 빠져 나오는데 꽃동무가 빌레나무가 있다고 알려준다.
이 녀석도 한라수목원 온실에서 꽃봉오리가 달린 걸 보고 왔는데 자생지에서 만나니 더 반갑다. 어린 녀석이라 꽃을 볼 수 없어서 아쉽다.
이영노 박사 도감에 천량금으로 기재되어 있는 이 녀석이 국가표준식물목록에 정식으로 <빌레나무>로 등재 되었단다.
빌레나무란 이름으로만 언뜻 외래수종 같지만 <빌레>란 용암이 식어서 만들어진 암반지대를 말하는 제주 지방 방언이란다
암수딴그루 아열대성 상록성 소관목으로 잎의 상반부에 드문드문 거치가 있다.
숲 안쪽에 밤일엽이 있다고 가리키는 곳을 보니 엄청 잎이 크다. 아무리 바빠도 담을 건 담아야 한다. ㅎㅎ
일엽의 한 종류이니 우단일엽이나 고란초 정도 크기로 생각했었는데 손바닥 길이 보다 더 길다.
뒤 쪽에 포자가 질서 있게 피고 있다. 누가 이 녀석의 엉성한 포자를 보고 참 소심하게도 달렸다고 했던가? ㅎㅎ
양치류에는 눈길 돌릴 여유가 없었지만 그래도 특별한 녀석 몇 종을 담아 본다. 가는쇠고사리라고 알려준다.
곶자왈 입구에 버려 둔 생활 쓰레기를 보면서 끌끌 혀를 찬다.
관광객이 많이 찾는 제주에 이렇게 몰상식하게 쓰레기를 버려서 되겠나?
상동나무가 반덩굴성 가지를 주변 관목에 걸치고 있길래 혹시나 열매가 있나 살펴 봐도 보이지 않는다.
더 머뭇거릴 사이도 없이 보춘화를 보기 위하여 차에 오른다. 보춘화 꽃을 한번도 본 적이 없는 나는 기대가 크다.
눈에 익은 삼거리 부근에서 차를 세우고 제멋대로 돋아나서 자라고 있는 유채 밭을 가로 지른다.
밭 가에 무리 지어 핀 광대나물이 현무암 돌담과 어울려서 아름다운 풍광을 만들고 있다.
보춘화가 궁금하긴 하지만 한정된 공간에 여러 사람이 차례를 기다려야 한다기에 꽃동무 한 분과 주변을 어슬렁거려 본다.
흰 제비꽃이 벌써 피어 있다. 왜제비일까?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흰제비꽃이라 해 둔다.
보리밥나무도 갈색 인모를 덮어 쓴 열매를 달고 있다. 꽃이 10~11월에 피어서 지금 열매가 여물고 있는 것이다.
상록성 나무 중에 가을에 꽃이 피는 녀석들이 많다. 상동나무, 사스레피나무, 우묵사스레, 보리밥나무....
반 덩굴성 가지를 가진 보리밥나무는 잎이 두텁고 앞 뒷면에 백색의 인모가 덮여 있다. 오래 된 잎에서는잎 앞면의 인모는 사라진다.
상록성 중에 뒷면이 분백색인 보리밥나무에 비하여, 갈색을 띤 백색인 보리장나무가 있다.
보리장나무는 수목원에서 볼 수 있을 뿐 제주도에서도 자생하는 걸 본 적이 없단다.
보춘화다. 꽤 많은 개체가 군락으로 자생하고 있었다. 개화가 시작되고 있거나 봉오리를 물고 있는 녀석도 많다.
처음 만나는 보춘화 꽃이라 정신없이 담느라고 향을 맡은 여유도 못가졌다.
많은 꽃대를 올리고 있는 이 무더기 앞에서 다들 오래 공을 들이느라 차례를 기다려야 했다.
갈비탕 한그릇으로 늦은 점심을 해결하였다.
아침 결에 잠깐 부슬거리던 비는 이미 그친지 오래지만 꿀꿀한 날씨라서 세복수초가 꽃잎을 펼치긴 했을까 걱정하면서
세복수초가 일찍 핀다는 오름 골짝으로 향한다.
골짝 초입에는 변산바람이 하얗게 깔려서 깔깔거리고 있다. 제주의 변산은 키가 작아서 참으로 귀여웠다.
오전에 내린 빗방울에 꽃잎이 아직도 촉촉하다.
복수초는 일정 온도 이상되어 주어야 꽃잎을 열어주기 때문에 부슬거리는 비와 어두운 하늘로 저으기 조바심이 났다.
일부러 백서향 곶자왈부터 들르고 오후에 찾았는데도 곶자왈 입구에서 부터 봉오리 상태로 앙 다물고 있는 녀석들의 모습에 애가 탔다.
다행스럽게도 안쪽 군데 군데 조금씩 꽃잎을 펼치는 녀석들에 다들 반가워하며 수없이 절을 한다.
세복수초는 잎이 꽃보다 먼저 나온다. 잎이 잘게 갈라졌다고 헤서 세복수초란 이름을 얻게 된 녀석은
잎 가운데 동그란 꽃봉오리를 품고 쏘옥쏘옥 솟아 오르고 있었다. 지천으로 깔린 세복수초에 발걸음 옮기기가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세복수초 필 때 쯤 함께 피는 새끼노루귀.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녀석이라 꼭 만나야 할 녀석이었다.
마치 연출해 둔 것처럼 나무 뿌리에 자리를 잡고 이끼를 덮고 돋아난 인기 만점이었던 새끼노루귀 한송이다.
분홍색 새끼노루귀도 돋아 나고 있었다. 새끼노루귀란 이름에 걸맞게 자그마한 녀석들이아서 눈여겨 찾아 봐야했다.
얼룩무늬 잎이 새끼노루귀를 증명 할 수 잇는 것인데 아직 잎이 돋아나지 않았다.
이른 봄이라서 담아야 할 종이 몇 종 안되어서 일찍 끝이 났다.
시내로 돌아오는 중에 흰광대나물이 있다기에 잠시 들러서 아쉬움을 달랬다.
밭 고랑 한쪽에 피어 있던 이 녀석은 왜제비꽃이 맞을 거다.
마을 골목 돌담에 기대어서 피어 있던 동백의 붉은 열정이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