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2. 6. 제주.
블방 친구인 c님과 연락이 닿은 덕분에 n 님도 함께하여 제주 둘째 날의 꽃여행을 시작한다.
9시, 약속 장소에 도착하니 벌써 두 분은 종합경기장 마당에 나와 계신다.
전화로만 통화를 하였지만 간접적으로 얼굴을 뵌 적이 있는 두 분과 반갑게 수인사 나누니
마치 오래 전부터 잘 아는 사이 같은 생각은 나만의 느낌일까?
c님이 근무하시는 생태숲을 잠시 들러 잠시 살펴보니 조성한지 역사가 일천하여 아직 자연스런 맛은 부족하다.
제주의 자생식물로만 조성되어 있어서 다른 타 수목원과 차별화를 두었단다. 그러니까 생태숲이라 이름 붙었겠지.
생태 숲을 돌면서 멀리 바라보니 잔설이 남은 한라산 북벽이 이마빼기에 와 닿는다.
털괭이눈과 새끼노루귀를 만나러 교래리로 먼저 방향을 잡는다.
목적지에 도착하여 새끼노루귀를 찾는 동안 콩짜개덩굴을 담고 있으니까 그걸 뭐하러 담느냐고 웃으신다.
콩짜개 쯤이야 육지의 애기똥풀 정도로 흔하기 때문에 쳐다보지도 않는단다.
뭍에서 간 아짐은 제주의 모든 것이 이국적이라 콩짜개덩굴이야 당연히 담을 대상인 것을.
내 콩짜개 담는 걸 보시던 ㅊ님이 육지에 갔다가 노랗게 핀 애기똥풀을 보던 이야기를 하신다.
육지에 갈 기회가 있어서 애기똥풀이 있는 걸 보고 먹던 점심도 팽개치고 애기똥풀 담느라고 정신이 없자
함께 있던 일행이 그 눔의 흔해 빠진 똥풀을 뭐 그리 귀한 것 본 듯이 담느냐고 어이 없어 하더란다.
도랑이나 풀밭에 지천으로 깔린 그 애기똥풀이 제주도에는 볼 수가 없단다. ㅎㅎㅎ
그런데 햇살을 충분히 받지 못하는 곳이라 그런가?
흰털괭이눈은 겨우 한 송이 개화를 하고 새끼노루귀도 겨우 2 개체 찾았는데
이른 시각이라서 이 녀석 입을 열어 주질 않는다. 에거~! 뭍에서 간 아짐 사정 좀 봐주지.
흰털괭이눈은 제대로 담기지도 않았다. 새끼노루귀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두 녀석을 보았다는데 의미를 두면 되지 욕심을 부릴 필요는 없다.
네 갈래로 갈라진 누런 상산 열매가 아직도 매달려 있다. 겨울 오름에는 이 상산 열매가 어렵잖게 보인다.
두 녀석에 대한 아쉬움을 뒤로하고 세복수초 꽃밭으로 이동하니 이 년 전에 와 본 장소 같다.
그 때 세복수초가 무지 흐드러져 있었는데, 몇 개체밖에 안 보인다. 오름 그늘이 두터워서 그런가?
겨우 두어 송이 핀 걸 두고 이리 찍고 저리 찍고, 여러 번 감사의 절을 올린다.
2월 초에 내려 와서 세복수초를 제대로 만나지 못하고 가게 되는 건 아닐까 슬그머니 조바심이 난다.
변산바람꽃도 개화를 하였다는데 아무리 찾아도 보이질 않는다.
결국 이튿날 7일 다른 몇 분들과 그 곳을 다시 가서 수줍게 고개 숙이고 있는 변산아씨를 만날 수 있었다.
복수초 바로 곁에 두고도 찾지 못하였다니. 너도바람 처음 만났을 때처럼 가랑잎 이불을 덮은 쪼꼬만 꽃송이는
찬찬히 보지 않으면 눈에 잘 띄지도 않는다. 육지에서도 만나지 못했던 변산아씨를 제주에서 만나고 보니 감개무량하다.
세복수초가 가장 빨리 핀다는 오름으로 이동하기 위하여 제주시로 되돌아 온다.
간단하게 점심을 해결하고 서편으로 이동하는데 변산바람꽃이 있는 곳을 확인해 줄 수 있다는 연락이 온다.
시간을 허비하게 되면 세복수초와 봄꽃향유를 보지 못할까 봐 변산아씨는 육지에서 만나기로 하고 북도라진오름으로 향한다.
오름 아래 초지에는 말과 소들의 배설물이 깔려 있다. 여름이면 이 곳 초지는 소와 말들의 차지가 된다.
오름 골짜기 관목 잔가지를 헤치고 들어서는데 계곡 초입에 한 무더기 세복수초가 방문객을 반긴다.
카메라를 들이대려는데 함께 하신 **님이 안으로 더 가면 많이 폈을 거란다.
30m 정도 더 들어가니 여기 저기 노란 꽃송이가 바닥에 널려 있다. 반갑다 세복수초야!
마치 털목도리를 두른 듯 녹색의 잎이 노란 꽃을 받쳐주고 있다.
세복수초는 잎이 꽃보다 먼저 나온다고 기재되어 있는데 꽃과 잎이 거의 함께 나오는 것 같다.
첫 장소에 별로 피지 않아서 풀 죽어 있었는데 반가운 마음에 어떤 녀석부터 담아야할지 정신이 없다.
보이는 대로 마구 마구 담는다. 볼록하니 올라오는 꽃봉오리와 노란 황금잔이 방문객을 행복하게 한다.
바닥에는 몽글몽글 올라오는 꽃봉오리가 깔려 있어서 발을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아마추어 진사인 나는 허겁지겁 닥치는 대로 담고,
베테랑인 **님은 그림이 좋은 녀석 몇 장만 골라서 정성들여 담으신다.
나야 뭐 질보다 양이 먼저니께. 암만.
이렇게 작은 꼬마 꽃향유라니. 크기가 2cm가 채 못되었다.
하도 작아서 꽃이 여기 있다고 가리키는 곳을 한참이나 노려보고서야 알아채었다.
이영노박사에 의하여 봄꽃향유로 등재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새로운 종이다 아니다 의견이 분분하다고 한다.
일부에서는 한라꽃향유가 너무 일찍 발아하였다가 추워서 식겁을 하고 꽃을 피우다 보니
채 자라지 못하고 꽃을 피우는 자연적 현상으로 본다고 한다.
한라꽃향유 자식이 맞는지 아니면 새로운 종인지 DNA 검사라도 해야 할 것 같다.
이 녀석은 2~3월에 꽃을 피운다고 한다. 아직 일러서 그런지 2개체 밖에 볼 수 없었다.
떡잎이 2장, 본잎은 마주나기인데 제 1본잎과 제 2본잎이 각각 2장씩 모두 4장이다.
잎과 줄기, 화관에 하얀 털이 가득하였다. 눈꼽만한 녀석 담느라고 눈 빠지는 줄 알았다.
봄꽃향유를 담느라고 화산탄 바위벽에 바짝 얼굴을 들이대었더니 분화구 깊은 속에서 올라오는 따뜻한 온기가 느껴진다.
그래서 한라꽃향유 씨앗이 제 철을 잊어버리고 너무 일찍 발아를 하였을까?
꼬마 꽃향유가 사는 화산탄 벼랑에는 구슬붕이도 계절을 잊고 피어나고 있었다.
바위손과 구실사리도 발그레 단풍이 들어 있다. 따뜻한 현무암 온기에 얼굴이 달아 올랐을까?
바위손에 몸 부비며 차꼬리고사리도 이쁜 잎을 펼치고 있다.
오름 분화구 안은 따뜻하기만 한데 분화구 밖으로 한 걸음만 올라서도 거센 바람에 휘청거려 몸을 가누기 어려울 정도다.
까마득한 발 아래 분화구 안에 누군가 화산탄으로 돌탑을 쌓아 놓았다.
돌만 보면 탑 쌓기를 좋아하는 우리네 기원 신앙이 여기서도 드러난다
멀리 손에 잡힐 듯, 뒤쪽으로 희끗한 눈을 이고 있는 한라산이
발치 아래 크고 작은 오름을 거느리고 웅장한 위엄을 보이고 있다.
저 너른 치마 폭에 귀한 나무와 풀꽃들을 품고 허파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언젠가 한번 저 산허리에서 어정거리게 될 여유를 가지게 되겠지.
한가롭게 풀을 뜯는 백마 잔등 위로 기울어 가는 겨울 해가 아쉽다.
단 하나 꽃을 좋아한다는 공통 분모로 오늘 하루 시간을 온전하게 내어 주신 ㅊ님이 너무 고맙다.
빚은 갚아야 하는 것, 언젠가 기회가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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