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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나누기/탐사 일기

애인이 생겼어요(2006.6.6)

by 여왕벌. 2007. 6. 5.
어제
모처럼 공짜로 얻은 휴일(호국영령들께 지송^^*)
만사 다 제쳐 두고
방 구석에 눈길조차 주지 않던 베낭을 집어들었지요
조그만 보온병에 토마토 갈아 담고,
고만한 생수병 하나 넣고, 음료수 병 하나 넣고
ㅎㅎㅎ...씹을 거리는 하나도 없네요.

가까운 예천 백두대간 언저리에 있는 사찰로
무작정 향했습니다.

언젠가 야생화 동영상 작업 때
둥글레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났기 때문입죠.
그 곳에는 없는 기 없다고.....

초임지 첫 부임학교 옆을 지나고
높다랗게 뚫린 새 도로를 지나
계곡을 끼고 한참 올라간 곳.

몇년 전 잠깐 들렀던 곳이지만
그 땐 아무 생각 없이 갔던 터라
주변 수풀에 관심이 없었지요.

생각보다 숲이 무척 깊어서
아무래도 횡재를 할 것 같은 예감에
발걸음은 바빠지는디

포장길을 버리고
도랑가 숲으로 한 발짝 들여 놓는 순간

헉~! 도랑가를 도배를 하고 있는 녀석
낯이 설지 않다. 
매미꽃인가? 피나물인가?
꽃이 져버려서 확인 애매.

잎자루를 뜯어 보니 베어 나오는 피빛 유액
마침 가져간 휴대용 도감 확인 결과 피나물.
도랑가를 아주 도배를 하고 있습니다.

벌깨덩굴은 꽃이 진지 오래라
벌써 덩굴이 길게 늘어 지고 있었고.

"어? 용둥굴레, 죽대도? 애기나리다.
우히히히히....신난다. 고사리삼 까정"

어둠이 눈에 익자 발을 옮겨 놓기 조심스러울 정도로
녀석들이 깔려 있었습니다.

"아니? 이~~~이건 얼룩무늬 천남성.
여긴 큰천남성이네? 우와 대따 큰 천남성이다."

천남성 동네 아이들 무슨 집회가 있나 봅니다
종류란 종류는 다 모여 있지 뭡니까.

혼자 소리 지르고 혼자 감탄하고
이리 저리 들여다 보느라 정신 없었더니
에구~~! 양쪽 팔뚝이 숲모기의 집중 공격으로
부글부글 울퉁불퉁 꼴이 말이 아닙니다요.

피가 나도록 박박 긁다가 침 발라 톡톡 두드리면서
엉긴 나무 가지 헤치고 길 반대쪽 숲으로 들어서니

우와~ 장관입니다요.
좌아~ㄱ 깔린 하늘말나리
한두 포기 만난 적은 있있지만
이렇게 떼거리로 만날 줄 상상도 못했습죠.
꽃이 핀 흔적이 조금 남아 있는
각종의 천남성 역시 각양각색으로 자라고 있고요.

참말로 고맙고 다행스러운 것은
사람의 손길 타지 않고 온전하게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차 바퀴 자욱이 숲에 있고
둘러 앉아서 놀다 간 흔적은 있지만
무늬천남성이 뭔지, 큰괭이밥이 뭔지
아직 누구도 이 도랑 섶의 풀들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음이 얼마나 다행입니까.

처음으로 조우하게 된 괭이눈은(포기 전체에 하얀털이 많더군요)
게슴츠레 열린 눈에 까만 종자를 담고 있었고
사랑초 처럼 커다란 잎을 흔들며 반기는 큰괭이밥.
꽃이 피는 봄에 와 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습니다.

다만 걱정스러운 것은
남자 등산객 서넛의 손에 들려 있던 뾰족 괭이와
불룩한 마대자루였습니다.

무언가 채취한 것은 분명한데
차마 그 자루에 뭐들어 있냐고 물어보지 못하였습니다.

그쪽은 장정 셋에 무기까지 가지고 있었고
저는 불면 날아갈 것 같은
너무나 연약한 여자 혼자였거덩요....

암자 까지 올라가는 길에 꺾여져 있던
하얀 쌀알같은 꽃을 달고 있는 죽대 줄기와
파여진 흙으로 미루어
아마 둥글레 뿌리를 채취하지 않았나 싶습니다만.

ㅎㅎㅎㅎ
시간이 나면 몰래 만날 애인이 생겨서 기쁩니다.
사십분 거리 그 애인 멀리 있지도 않으니
이제 문전이 닳도록 안부 물으러 다녀야겠지요?

꽃망울 달고 있던 산수국, 노루오줌 필 때쯤
가슴 설레며 기다려얍죠.
빠알갛게 매달려 있던 산딸기 익을 때쯤이면
더 좋겠지요?


새로고침꾸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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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왕님, 행복하셨겠습니다. 둥굴레 캐는 마음이야 애교로 봐주지요. 먹을걸 먹겠다는데.... 06.06.07 21:25
 

제목만 보고서 여왕벌님 덕분에 잔치국수 먹겠구나... 했더니 산행길에서 만난 애인 덕에 아주 신이 나셨습니다. 시간이 나면 몰래 만날 애인이 생겨서 기쁘시다니 저도 축하드립니다^^* 06.06.07 22:21
 

우선 늘 그리워하시던 애인을 가까이서 보실 수 있으시니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고운 애인때문에 아파하실 일 없으셨음 좋겠어요... ^^ 06.06.07 22:22

ㅋㅋ.. 현충일날 애인 만나는 사람... 부럽습니다..^^ 06.06.07 22:42
 

잔치국수 먹을 애인이면 여기 적지도 않으실테니 짐작은 했지만 설레임은 저도 같아요. 아무튼 부럽습니다. 06.06.08 00:35
 

잔치국수 몇그릇 말아 준다 캐도 이글하고 안바꾼당. !!!. 무기 든 남자들, 여왕벌님 논리정연한 말솜씨로 해결하시지 그러셨어요. 하긴, 말귀 어둔 사람들이 많지요. 06.06.08 01:33
 

모기에 물려 박박 긁고 피 흐르는 곳 침으로 바르지 말고 피나물 이파리 하나 톡 뜯어 붙여보지 그러셨어요. 부러랑. 난 언제쯤이나 이런 장면 함 겪어보나... 저도 축하드려요 선생님. 06.06.08 06:38
 

(^___^) 차라리... 현실의 애인 만들어서 함께 가세요~~ 그곳에...;;; 06.06.08 09:20
 
ㅋㅋㅋ 싸리님, 그럼 자연과 현실이 서로간의 질투로 인한 비극이 발생할 소지가 있을 듯 싶은데여? ㅋㅋ 06.06.08 09:52
 
맘님... 그건 아름다운 비극이예요(^___^) 06.06.08 12:16
 

축하드립니다.... 06.06.08 10:26
 

좋으시겠습니다 ㅎㅎㅎ 06.06.08 17:25
 

아이구! 나는 언제 저런 애인 생길고. 부럽습니다.ㅋㅋㅋ^^* 06.06.08 18:33
 

헤헤~! 인자 여기 저기 곳곳마다 몰래 애인 맹글어 둘 계획임다. 크~! 몰래한 사랑. 06.06.08 18:51
 

^^ 부럽습니다 06.06.09 09:36
 

난 정말 애인 생긴 줄 알고서...괜히 혼자 얼굴을 붉히고서 히히히. 06.06.09 22:04

깜짝이야~~~~ㅎㅎ 진짜로 국수 안주니껴? 봉투 준비하고 있는데요^^* 06.06.10 12: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