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야기나누기/사는 이야기

나가 길바닥에 쓰러졌잖여

by 여왕벌. 2023. 10. 13.

2023. 10. 13. 
 
칭구야
나가 그제 길바닥에 엎어졌다네.
 
집 주변 T 자 갈림길 찻길에 차를 세웠지. 큰도로는 아니고 신호등이 없는 도로변이었어. 
차량 이동이 많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우회전 위치에 차를 세우고
카메라와 깔개를 비롯 필요한 것들을 주섬주섬 챙겨서 바로 횡단보도 옆 인도 보도브럭에 자리를 잡았다네.
 
적어도 한 시간 정도 눈씨름해야 할 촬영이 필요했거덩.
바로 요넘이여. 뭔지 알겄제?

애기땅빈대 줄기 끝에 붙어 있는 좁쌀보다 작은 꽃을 찍어야 했다네
 

 
꽃이 아니고 열매라고?

 
자알 살펴 보시게
쩌~그  세 갈래로 갈라진 빨간 암술을 달고 있는 자방이 보이는감?

아니 큰 열매 말고 가지 끝 오른 쪽 끝에 쪼꼬만 거.
하얗게 원형으로 꽃 모양을 하고 있는 게  꽃이고 그 가운데 열매 모양의 자방을 품고 있다네

 
그려. 욘석 꽃을 150장 넘게 찍어야 했다네.
아니, 지난 번 그 일이 두번 째로 중단되었다고 했잖냐고?
그렇제, 중단 되었었지.
 
근데 나는 다시 길바닥에 퍼질러 앉아서 욘석과 씨름을 시작하고 있다네
그 야그는 뒤에 하기로 하고.
 
보도블럭 틈에 뿌리 내리고 땅바닥에 빈대 처럼 납작하게 붙어 있는 땅빈대니,
녀석의 꽃 얼굴을 보기 쉬울 리가 있간디?
열매도 맨눈으로 보기 쉽지 않은데 꽃을 어케 찍냐고요.
 
루뻬를 꺼내 들고 가지 끝 마다 헤집어서 꽃이 있나 뒤지면서 
얼굴을 땅바닥에 붙이고 초접사를 하느라 호흡조차 멈추고 촬영에 집중하고 있었지.
 

 
 
헌데 점심 시간이 되자 차량 통행이 거의 없으리라 생각한 작은 도로에 차량이 부쩍  많아지면서
뒤꼭지가 따끔거리를 시선을 느꼈지 뭐인가.
아하~! 우회전 코너에 내 차를 세워 두어서 운전자들이 째려보는가 보다 싶어서 좀 미안했지.
 
"괜찮으세요?"
붉은 암술을 찾아서 촬영에 집중하고 있다가 갑자기 들려오는 다급한 소리에 고개를 드니
30대 후반이나 40대 초반 쯤 되어 보이는 착해 보이는 남자 운전자가
차를 길 가운데 급하게 세우고 놀란 얼굴로 다가 오는거여
 
" ???......"
처음에는 상황 파악이 안 되어서 무슨 일인가 싶어서 왜 그러세요 하는 표정으로 나도 그 사람을 쳐다 봤지.
그러다가 이 상황을 금방 알아채었다네.
 
차는 옆에 서 있는데 내가 늘 착용하던 검정색 크로스 가방이 저만치 바닥에 팽개쳐 있고,
사람이 횡단보도 옆 길에 쓰러져서 꼼짝을 안하고 있으니.
그걸 발견한 운전자가 누군가 정신을 잃고 쓰러진 줄 알고 놀라서 달려온 거야.
 
그제서야 나는 아차~~! 했다네
길바닥에 엎어져서 촬영을 하면서도 이런 상황을 예측하지 못했던 거지.
 
카메라를 들어 보이면서 사진 촬영하고 있다고, 놀라게 해서 죄송하다고,
달려와 주어서 고맙다고,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고......., 놀래킨 죄로 장황하게 해명 아닌 해명을 했지 뭔가.
 
그 젊은이는 정말 놀란 얼굴이었어.
그래도 다친 게 아니라 다행이라고 하면서 놀란 가슴 진정시키더군.
정말 고맙고 미안하기도 했다네.
 
헌데 잠 시 후 또 비슷한 상황이 일어났다네.
 
이번에는 운동 나왔던 60대 여자 분이 나를 발견하고 멀리서 일부러 달려 왔다네.
쓰러져 있는 줄 알았다고, 사진을 찍고 있다면서 또 카메라를 들어 보여 주었지.

그 여자 분은 좀 어이 없다는 표정을 하면서 무슨 꽃이 있냐고 묻더군.
그 사람들 눈에는 잡풀떼기 애기땅빈대를 사진 찍고 있다는게 이해되지 않는 거여.

 
에고~~! 이누무 땅빈대 땜시 내가 오늘 여러 사람 놀래켰다네.
 
뒤꼭지 따끔거리게 했던 시선들도
내가 혹시 쓰러져 있는가 싶어서 서행하는 차들이 지켜보며 지나갔던 거 같아.
 
오래 전 현직에 있을 때에도 도로변에서 목발까지 옆에 놓고 접사 촬영하느라 업드려 있다가
지나가는 운전자가 놀라서 차를 세우고 괜찮냐고 걱정해 주었던 일이 있었잖는가.
 
이웃조차 믿기 어려운 흉흉한 사건이 연일 터지고 있는 불안한 시기이지만
그래도 아직 사람 살만한 세상은 맞는 거 같아서 기분 좋은 날이었다네
  
뭐?
아직 궁금한 야그 남아 있다고?
 
그렇지~!
에혀~!! 올해는 무슨 마가 끼어 있는 해인지.
 
독초사진 프로젝트 2차 부적격 판정 후 우리는 완전 포기하고 잊어버리고 있는데
보름 정도 지난 며칠 전 
부적격 판정에 대하여 이의 신청을 제기한 것이 받아들여져서 재심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거의 될 거 같으니 제발 마무리할 수 있게 협조 해달라 교수로부터 연락이 왔다네.  
 
우리는 석 달 동안 개고생 하고 두 번이나 농락당한 느낌으로 끝나 버렸다고
모두 마음이 식어버린 상태라 고개 돌려 외면하였지만 
이제까지 촬영한 것으로 진행해 보자는 간청에
세 번은 속아 보자고 요청대로 사진 파일 집계를 하고 정리하기로 했지.
 
부족한 부분도 계속 보완 촬영을 하기로 했는데, 애기땅빈대도 그 걸 보완하는 중이었었지
다시 일주일 동안 주변을 다니면서 미흡한 사진 보충하느라 또 매일 하루를 고스란히 소비하고 그러고 다녔다네.
헌데 재심의가 끝나고 오늘까지 결정된다더니 아무 연락도 없네.
 
결국 예상대로 세 번 뒤통수 세게 맞는 것 같네.
이젠 화낼 기운도 없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