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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나누기/사는 이야기

전주에서 1박 2일

by 여왕벌. 2022. 7. 26.

2022. 7. 24- 25.

 

"제 어줍잖은 이야기 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의 이야기가 여러분들의 숲 교육에 어느 부분 녹아들어 

작은 자리라도 차지할 수 있기를 바라는 기대를 전하면서 저의 이야기를 마치겠습니다."

 

참으로 따뜻한 환대였다.

호기심과 기대감으로 가득한 눈빛과 오랜만에 만나는 벗을 반기는 듯한 표정이 이상하리만치 친근하게 느껴졌다.

숲과 식물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라는 동질감 때문이었을까?

 

 

 

3월 늦은 어느 봄날,

작년에 통조화와 섬진달래 탐사를 함께 했던 전주의 박 시인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본인이 부회장으로 있는 전북숲해설전문가협회에 와서 식물이야기를 해달라는 요청이었다.

 

사실 나는 입담이 별로여서 사람들 앞에 나서면 딱딱한 교육자 기질이 발현되어서 참 재미 없는 강사의 한 사람이다.

교직에 있을 때 교육연수원에서 있던 교사들 연수에서도 건조하기 짝이 없는 강의를 하였더랬는데,

이태 전 덕유산에 있는 모 기관의 특별강연에서도 똑 같은 재미 없는 분위기를 만들었던 터라,

다시는 강의를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있어서 몇 곳의 요청을 거절해 왔었다.

 

이 번 요청도 역시 내 강의는 재미가 없다고 고사를 하였지만

많은 회원들이 여왕벌을 궁금해 한다고 꼭 허락을 부탁한다며

그냥 편하게 그 동안 식물 탐사 이야기만 해 주면 된다는 말에 결국 수락을 하고 말았다.

몽골 탐사 기간과 겹치는 줄도 모르고 6월 25일로 수락을 해 놓고 있다가

나중에서야 황망하게 일정을 바꾸어서 약속한 날이 한 달을 뒤로 미룬 오늘이었던 것이다.

 

"선생님 숙소를 잡아드릴테니 하루 전날 오셔서 주무시고

25일 고창과 군산 몇 군데 함께 식물 탐사하고 저녁에 강의를 하는 게 어떨까요?"

 

강의 날이 다가오던 며칠 전, 박 시인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어차피 먼길 내려가는 것이라 겸사 겸사 그 쪽 지역을 며칠 다녀볼 생각을 했던 터라 그러마 하고 약속을 잡았다.

 

일요일 전주로 가는 길은 장마 기간 이라 쏟아지는 국지성 호우로 잔뜩 긴장을 하며 차를 몰았다.

 3 시간이 넘는 시간을 헌납한 후에야 전주 시내로 입성할 수 있었는데,

다행하게도 남부 지역에는 비가 내리지 않았다. 

 

일요일 오후 늦은 시간이라 시가지는 크게 붐비지 않아서 무난하게 숙소로 들어가는데,

호텔 앞에 이미 나와서 기다리고 있던 박 시인이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전주비빔밥으로 유명한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하는 자리에

작은 마을 신문 기자 생활과 전북지역에서 문학활동을 하는 동화 작가 한 분과 함께 하게 되었다. 

 

아기아기한 귀여움과 야무진 모습의 그녀는 식사 후 차 한 잔을 함께 하면서 집필한 동화책 두 권을 선물해 주었다.

시골마을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한 아주 이쁘고 행복한 동화는 내 마지막 학교 15명의 아이들을 떠 올리게 해 주었다.

 

 

 

나는 이성적이기 보다 감성적인 성격이다.

식물과 대화하는 것은 일상적인 것이고, 반려동물이나 아이들을 보면 그저 흐뭇하고 아무 이야기나 걸어 보고 싶다. 

 

마지막 근무지였던 안동 벽촌의 작은 학교,

그 학교 선생님들과 아이들과의 4년의 인연이 내게는 축복과 같은 시간이었다.

학교 아이들에게도 교장선생님이 아니라 할머니같은 존재이고 싶었었다.

그 이아이들에게 쏟아부은 다양한 체험과 숲 사랑 교육 에피소드도 강의 내용에 들어가 있었다.

 

 

 

이튿날 아침 호텔 주차장에는 탐사 일정을 안내하려는 박 시인이 이미 차를 대기해 두고 있었다.

날씨는 아주 상쾌할 정도로 구름이 가벼워졌다.

 

여름 저수지의 습지 식물 탐사는 재미있긴 하지만 텁텁한 무더위는 참을 수 없는 고역이라

장화와 우산은 필수용품이다.

그늘 없는 땡볕 아래 저수지에 들어서면 턱밑까지 숨이 차오르고 조금만 움직여도 사우나에 들어간 듯 옷자락이 칭칭 감긴다.

 

내가 내려 온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목포의 꽃동무 부부도 저수지에서 합류하여 함께 습지 식물을 탐사하였는데

이 저수지에서 처음 발견되어 신종 등록된 고창고랭이와 함께 제주고랭이를 처음 만나게 되어 더 반가운 탐사였다.

이 곳에서 몇 시간이고 탐사를 하고 싶었지만 일정 상 다음 기회로 미루어 두었다.

 

 

 

군산까지 가서 저수지 주변의 식물을 만나고 청사조까지 촬영하다 보니 시간이 빠듯하다.

부랴부랴 군산을 출발하여 협회 사무실 근처 사우나에서 땀을 씻고 옷을 갈아입으니 살 것 같다.

 

온 종일 모든 일정은 박 시인이 협회의 부회장 자격으로 그 역할을 다해 주었는데

오늘 하루를 위해서 하루 연가 까지 냈단다. 너무 고마운 일이다.

 

협회 사무실과 가까운 식당에서 협회 회장님, 전임회장님과 저녁 식사 후 사무실에 들어서니

벌써 회원들이 모여서 기다리고 있다. 모두 표정들이 참 밝다. 

내 입에서 어떤 이야기가 나올까 기대에 찬 표정을 보니 과연 이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지 좀 걱정이었다.

 

 

 

약간의 위트를 섞어가면서 내 어릴 적 시골에서의 식물에 얽힌 이야기부터 시작하여

식물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 어떻게 식물을 바라보았는지, 식물을 익히기 위해서 얼마나 분석을 하여 촬영하고

많은 도감과 논문, 외국사이트 를 찾아 보았는지, 블러그의 자료들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탐사 중 위험했던 순간, 어떻게 하면 식물을 구분할 수 있는지, 미기록식물과 신종 등의 식물을 발견하게 된 이야기 등,

에피소드를 곁들여서 이야기하는 동안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게 두 시간이 흘렀다.

 

 

 

처음 계획은 질문을 받고 그 답을 하면서 풀어갈 계획이었는데

내 얘기만 떠들다 보니 질문을 받을 시간도 없이 후딱 두 시간이 흘러 버렸다. 

중간 중간 호응을 해주면서 잔잔하게 웃어주는 회원들의 표정을 보니

내 이야기가 지루하지는 않구나 하는 느낌이라 다행이다 싶기도 했던 전주에서의 만남이었다.

 

식물에 빠져서 살아온 30년

이름도 잘 모르던 풀들을 들여다 보고, 이름을 찾아보고, 전국의 산천을 쏘다니면서 처음 대하는 식물에 환호하고,

무인도의 관목 숲을 뚫고 헤쳐나가면서 목적하던 녀석을 마주했을 때의 그 환희,

초짜 잡풀떼기 파 아마추어가 새로운 미기록식물과 신분류군을 등록하기 까지 30년의 기간은 참 행복한 시간이었다.

사람들은 그 이야기를 궁금해 하지 않았을까?

 

 

 

그 많은 이야기를 두 시간으로는 다 풀 수는 없었지만 사람들의 반겨주는 표정이 고맙고,

이틀 동안 온전히 나를 위하여  '풀코스' 시간을 할애해 준 박 시인도 고마운 사람이었다. 

 

*************

 

강의 다음 날 완도로 내려가면서 지난 번 거절했던 모처의 숲해설가 회장인 최선생님한테 전화를 연결하였다.

어제 전주의 강의 이야기와 함께 그런 내용과 약간의 식물공부에 도움되는 내용을 섞는다면

언제든지 요청에 응하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