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3. 10.
한 열흘 정도 비와 눈으로 해를 보지 못하였는데
오늘 아침 갑작스런 눈으로 출근 길을 난리 북새통을 만들더니 오후에 반짝 해가 난다.
맨날 퇴근이 꾸물거려서 남 늦게 문을 나섰는데 오늘은 땡~! 하자말자 시동을 건다.
그냥 바로 운동하러 갈까 하다가 햇살이 아까워서 올괴불나무 안부라도 묻고 가야 할 것 같아서 샛길로 샌다.
산 길을 이십 여 분 올라야 만나는 녀석이라 느적 느적 눈내린 산의 호흡에 동화된다.
평일 오후의 등산로는 가끔 솔가지의 눈 덩이 떨어지는 소리만 적막을 깨고, 흰 눈으로 어지러움을 덮은 산은 맑기 그지없다.
출근 복장에 등산화만 바꾸어 신은 터라 당겨지는 바지가 신경이 쓰였지만
그리 불편하기 않을 정도로 산길은 여유롭다.
이쯤이지 싶어서 두리번거리는데 몇 미터 지나 버렸다.
작은 관목이 진달래랑 비슷한 수형이라서 자세히 보지 않으면 찾기 어렵다.
몇 걸음 되돌아 가니 에그~~! 녀석 뭘 그리 꾸물거리는지 여직도 꽃을 피우지 못하고 있다.
지난 번 보다 조금 더 커지기는 했는데 아직도 며칠 기다려야 하겠다.
30분 쯤 더 올라가면 능선 위의 올괴불이 몇 송이 피었음직 한데 5시 넘은 시각에 올라 봐야 어두워서 소용이 없다.
그래도 안부를 확인하러 능선까지 더 올라 가 보고 싶은 맘을 접고 내려오는 길은 봉정사 쪽으로 향한다.
원래 사찰 쪽으로 등산로가 있었는데 하도 등산객으로 번잡스러우니까 봉정사 측에서 막아 버린 길이다.
새로 난 등산로는 봉정사를 거치지 않고 일주문 부근에서 오르내리도록 만들어졌다.
아무도 밟지 않는 눈 속을 빠지면서 내려오니 소나무 사이로 영산암 뒤쪽이 보인다.
멀리 봉정사 본당도 보인다. 눈 내린 솔숲에 둘러 싸인 영산암 뒷모습이 참 평화롭다.
영산암 앞 부속 건물에 고드름이 주렁주렁이다.
갑작스럽게 눈이 오면서 금방 녹기는 했는데 그래도 겨울 끝이라 고드름이 제법 길다.
절 마당을 내려 오는데 엄니의 전화다. 엄니의 목소리가 밝으시다.
"야야~! 마당에 눈 다 녹았다. 차 들어 와도 된다'"
집 앞에 천방 둑이 있다. 집에서 그 둑을 오르는 비탈 길이 눈이 오면 꽤 미끄럽다.
엊저녁에 진눈깨비와 섞인 비가 오길래 혹시나 해서 차를 천방 둑에 세워 두었더랬는데
예상대로 기습적인 폭설이 내려서 오늘 아침 출근 길이 난리가 났었다. 직원들 지각 사태에 스쿨버스까지 발이 묶였다.
눈만 오면 정작 나보다도 더 딸래미 출근 길 걱정이시다 . 아직도 당신 눈에는 어린 다섯살로만 느껴지는 부모님 마음이라.
다행하게도 미리 대비한 덕분에 엄니 걱정을 덜어드렸다.
절 아래 오리나무도 빨갛게 꽃을 피우고 있다. 올괴불나무도 햇살 따시면 금방 꽃이 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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